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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위기에 빛난 ‘엄마 리더십’… 유럽의 여제로 서다

입력 | 2013-09-24 03:00:00

메르켈, 아데나워 - 콜 前총리 이어 전후독일 3번째 3선 성공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은 유럽연합(EU)에서 능숙한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안방인 독일에서도 경제 안정과 복지정책을 선도했기 때문이다.

이번 독일 총선은 유럽 최악의 재정위기 속에서 실시됐다. 유럽의 재정위기에서 재정 분담 비율이 가장 높았던 나라가 독일이다. 그렇지만 독일의 실업률은 현재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인 6.8%를 기록하고 있고 무역수지도 사상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총선 전부터 “독일 경제와 유럽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 첫 집권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60년 만의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으로 독일 경제를 살려내 강한 신뢰감을 얻었다. 두 번째로 집권했던 2010년에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닥쳤다. 메르켈은 그리스 스페인 등에 긴축재정을 압박할 때 너무 단호한 태도를 보여 ‘나치’에 비유되기도 했다. 남유럽 재정 부실 국가의 분담액 증액 요구에 맞서 독일 납세자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 않은 것이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이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바이에른 주 파사우대의 하인리히 오베르로이터 교수(정치학)는 “메르켈의 성공은 유럽의 위기 속에서 총리가 독일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력하게 심어준 데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의 별명은 ‘엄마’의 애칭인 ‘무티(mutti)’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고 침착하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리더십을 뜻한다. 메르켈은 이번 총선에서 ‘원전 폐기’ ‘어머니연금제’ 같은 야당이 추진할 법한 정책들을 재빠르게 수용해 이슈를 선점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일본 원전 사고 직후 28%까지 치솟았던 녹색당의 지지율이 총선에서 8%대로 추락한 것은 정부의 원전 폐기 결정으로 녹색당의 존재감이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메르켈은 명실상부한 유럽 ‘여제(女帝)’의 자리에 올랐다. 전후 독일 총리 중 3선에 성공한 사람은 콘라트 아데나워, 헬무트 콜 전 총리와 메르켈 등 3명뿐이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이번 총선의 압승으로 메르켈은 단순한 독일의 지도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메르켈은 총선 기간에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유로존 지원 대책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EU의 주요 현안 논의가 독일 총선 기간에 ‘올 스톱’될 정도였다. 유럽 각국의 국민들은 유럽 제1의 경제대국 독일의 총선 결과를 마치 자국의 총선처럼 목매고 기다렸다. 투표 결과가 나오자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도 “유럽의 승리”라며 일제히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1949년 창당 이후 매번 ‘킹메이커’ 역할을 맡아 정부에 참여했던 집권연정 파트너 자민당(FDP)은 처음으로 5% 미만 득표로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 등과 새로운 집권 연정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이미 사민당 당수와 접촉했다”며 대연정 협상이 시작됐음을 확인했다. 메르켈 총리는 우선 유럽중앙은행(ECB)이 주도하는 ‘은행동맹’을 완성해 유동성 위기를 근절하는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독일의 재정 부담이 큰 유로본드, 부채상환기금 창설 등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민당은 유로화 지역의 부채 해소에도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등 ‘친(親)유럽통합’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23일 유럽 증시가 일제히 상승세로 출발한 것은 독일이 총선 후 유로존 위기 탈출을 위한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긴축을 요구해왔던 보수 연정이 자민당의 추락으로 해체된 투표 결과를 보며 유럽인들은 독일이 적극적인 경기부양과 실업 해소 대책 마련에 나설 ‘대연정’ 구성에 대한 기대를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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