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복귀작 ‘소원’
소원(이레·왼쪽)의 아빠 동훈(설경구)은 상처 깊은 딸과 대화하기 위해 어린이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분장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소원’은 이 감독이 출세작 ‘황산벌’(2003년)로 돌아간 영화다. 전장에 나서야 하는 백제 장군 계백이 가족을 죽여야 하는 비극적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 낸 솜씨 그대로다. 눈물과 피가 흥건한 인생의 비극 무대에 희극을 올리는 연출법 말이다.
‘소원’은 울리다가 웃기다가, 관객 어딘가에 털 나게 하려고 작정한 작품이다. 영화는 눈물로 시작한다. 공장에 다니는 아빠 동훈(설경구)과 ‘소원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엄마 미희(엄지원),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소원(이레)이 한 가족. 비 오는 날 등굣길에 소원이는 성폭행을 당한다. 소원이의 상태는 영화 모티브가 된 2008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과 같다.
하지만 카메라는 상처보다는 극복과 치유를 위해 삶에 링거를 꽂은 소원이 가족과 주변의 노력을 담담하게 응시한다. 마누라 몰래 적금을 깨 소원이네를 돕는 동훈의 직장 동료와 입원한 소원이를 위해 방학숙제를 대신해 준 반 친구들이 등장한다.
평소 밥 먹을 때도 TV 속 ‘랏데’(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만 눈길을 주던 경상도 아빠는 딸과 대화하는 법을 찾는다. 얼굴 보기도 싫어하는 소원이를 위해 아빠가 코코몽(EBS 어린이 애니메이션 주인공) 분장을 하고 칠판에 글씨를 써 대화하는 장면에선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터진다.
이 감독은 23일 시사회 직후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탈무드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영화의 주제를 설명했다. 섬세하게 그려진 주인공들의 심리는 관객을 오래도록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아역 배우 이레는 복잡하고 미묘한 주인공의 심리를 성인 배우 뺨치게 연기해 냈다. 비극을 예술적, 철학적으로 승화해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대중이 공감할 수 있게 그려 낸 연출 솜씨가 돋보인다. 1000만 영화 감독의 관록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딸 가진 부모들, 그래서 이런 소재를 다루는 게 불편한 관객이라면 티켓을 사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용기를 내서 본다면 후회하지는 않겠지만…. 12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