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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연기-스토리-무대 다 좋은데 왜이리 헛헛할까… 잽만 날렸네

입력 | 2013-09-24 03:00:00

연극 ‘광부화가들’ ★★☆




광부화가 올리버의 생애 첫 그림을 보여주는 초반부. 이보다 인상적인 그림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도 뒤로 갈수록 탄력이 떨어진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도저히 재미없을 수 없을 듯한 연극이다. 우연히 접한 그림의 세계에 매료된 광부들이 일상 속에서 평생 치열한 미술 작업을 이어간 이야기. ‘광부화가들’은 1930년대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탄광촌 애싱턴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실화를 뼈대로 삼았다. 대본을 쓴 이는 글로벌 히트작 ‘빌리 엘리어트’의 작가 리 홀이다.

2007년 뉴캐슬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이듬해 영국 일간 이브닝스탠더드가 주최하는 시어터어워드 최고연극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3년 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처음 선보여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로 선정됐다.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로 대중에 얼굴을 알린 무대 경력 28년의 강신일(53)이 광부화가 공동체 애싱턴 그룹을 주도하는 올리버 역을 맡아 무게중심을 잡는다. 김승욱 김중기 민복기 송재룡 등 그를 둘러싼 베테랑들의 존재감도 만만찮다. 이들을 이끄는 이는 ‘칠수와 만수’ ‘B언소’ 등을 쓰고 무대에 올린 이상우 연출이다. 145분 내내 무대 위로 작은 틈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는 진용이다.

하지만 헛헛하다. 15분 인터미션을 틈타 극장 밖으로 빠져나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고민했다. 뚜렷한 갈등 없이 흘러가는 플롯은 얼핏 심심하지만 그만큼 현실감을 더한다. 내 안목과 소양이 부족해서 지루한 거겠지…. 마음을 다잡고 앉아 2부를 기다렸다. 더 축축 늘어졌다.

분명 매력적인 이야기다. 애싱턴 그룹 소속 광부 30여 명의 사연을 집약해 뽑아낸 캐릭터의 윤곽도 제각각 선명하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감히 언급하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여유가 넘친다. 정확하게 골라 쓴 단어들에는 공들여 번역한 흔적이 역력하다. 예고 없이 툭툭 던져지는 빛나는 대사들이 예술의 의미에 대해 행복한 사색거리를 안긴다.

그렇게 더없이 훌륭한 요소들이 하나로 꿰이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다. 불이 꺼지고 막이 바뀔 때마다 생각의 흐름도 갈피를 잃는다. 배우들의 능수능란함에 의지해 뭔가 그럭저럭 넘어가는 듯한 의구심마저 든다. 극 막바지, 예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광부 전원이 한껏 목청을 높인다. 이야기의 탄력과 객석의 긴장감이 초반만 못한 탓에 그 울림이 길지 않다.

좋은 이야기는 당연히 좋은 연극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취향 탓일지 모른다. 미술관을 찾을 때 오디오 가이드를 꼭 챙기는 쪽이라면 만족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 그저 하염없이 앉아있듯 무대 위 이야기와 소통하고 싶은 관객에게 이 연극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어느 쪽이든 인터넷을 통해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거나 프로그램 북을 챙겨 읽길 권한다. 리 홀의 소감문이 객석에서 안고 나온 미진함을 달랜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조건이 문화의 수준을 낮추는 것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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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번역·연출. 채국희 이원호 권진란 김용현 출연. 10월 1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1644-2003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