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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영어로 익히는 고전]푸든헤드 윌슨 ①

입력 | 2013-09-25 03:00:00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푸든헤드 윌슨’이라는 작품을 썼다. 사진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앞장선 남장의 여전사들을 소개한 히스토리채널의 프로그램. 동아일보DB

마크 트웨인의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은 남북전쟁 이전 미주리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인종적 편견과 노예제도의 잔혹함, 혼혈의 문제, 타락한 남부의 귀족문화를 보여줍니다.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삶에 있어 암울한 전환기(dark turn)에 썼던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아픔과 당시 미국의 역사적 맥락(historical context)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1835년 미주리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새뮤얼 클레먼스로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다양한 직업(varied type of jobs)에 종사했으며 남북전쟁에 잠시 참전하기도 했습니다(fighting briefly in the Civil War). 마크 트웨인이 가졌던 직업 중에는 수로 안내인도 있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 역시 ‘배가 지나가기에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1870, 80년대에 출판되면서 마크 트웨인은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명인사가 됩니다(at that time he became one of the most famous celebrities in the country). 하지만 그가 손댄 사업이 실패하면서 자금난(financial disasters)과 함께 인생의 암흑기(a dark period in his life)가 찾아옵니다. 이 시기가 그에게 ‘푸든헤드 윌슨’ 저술을 위한 영감(inspiration)을 줍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해방된 흑인 노예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실패합니다(The US attempted to create a place for the newly freed African American slaves, but seemed to fail). 분리하되 평등하게(separate but equal)라는 원칙을 지지하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이 제정되면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실제로는 인종차별(racial segregation)이 존재합니다.

흑인은 여전히 백인과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African Americans weren’t allowed access to the same things as white people). 예를 들어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백인이 타는 버스는 타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백인이 다니는 학교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또 백인우월주의단체(a white supremacist organization)인 쿠클럭스클랜(KKK)은 흑인에게 폭력(violence)을 행사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dark aspects of history)은 마크 트웨인이 ‘푸든헤드 윌슨’을 쓰는 계기(factor)가 됩니다.

‘푸든헤드 윌슨’은 마크 트웨인이 개인적인 어려움을 딛고 당시의 시대상을 참신한 관점(refreshing viewpoints)에서 바라봄으로써 탄생한 작품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크 트웨인의 힘들었던 시간이 우리 모두를 일깨웠다고(Mark Twain’s dark period has enlightened the rest of us)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