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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연수]‘오바마폰’ 블랙베리의 추락

입력 | 2013-09-25 03:00:00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즐겨 사용해 ‘오바마폰’으로 불리던 스마트폰의 원조 블랙베리. 마약 같은 중독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유에서 ‘크랙(crack·마약의 일종)베리’라고도 했다. 2008년 미국 대선 유세에서 오바마 후보는 늘 블랙베리를 갖고 다녔다. 유세 전용 비행기인 ‘오바마 원(1)’에서 내려 차에 타자마자 블랙베리를 꺼내 참모들이 보낸 e메일을 확인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보안을 이유로 블랙베리를 계속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참모들 간에 설전이 오갔지만 블랙베리에 대한 오바마의 애정을 꺾지는 못했다. 백악관과 국가안보국(NSA)은 철통보안 기능을 갖춘 슈퍼 블랙베리를 만들어 오바마 대통령에게 ‘1호 블랙베리 폰’을 사용하도록 했다. 해커가 대통령의 e메일을 훔쳐보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고 위치 추적도 할 수 없도록 만든 특수 휴대전화였다.

▷영원한 1등은 없다고 했던가. 블랙베리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헐값에 매각됐다는 소식이다.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블랙베리는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 갤럭시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날개 없이 추락했다. 그제 블랙베리는 지분 90%를 캐나다의 보험회사인 페어팩스파이낸셜홀딩스 컨소시엄에 47억 달러(약 5조 원)에 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때 최고 몸값 830억 달러(2008년)의 17분의 1밖에 안 되는 초라한 액수다. 휴대전화의 최강자였던 핀란드 노키아에 이어 블랙베리마저 커튼 뒤로 쓸쓸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1900년대 이후 세계 100대 기업에 꼽힌 413개 기업 중 80%가 30년 안에 사라지거나 인수합병됐다.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GE 포드 월마트 정도다. 사진의 대명사 코닥은 1970년대에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지만 변화의 속도를 예측하지 못해 파산했다. 경영학 교과서마다 빠짐없이 등장했던 닌텐도 역시 화투에서 전자게임기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스마트혁명에 밀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