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비즈니스 성공 변수로
촉각은 모든 동물의 감각 가운데 가장 먼저 발달한다. 그래서 촉각은 ‘감각의 어머니’로 불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은 시각이나 청각적 자극만 활용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상대적으로 촉각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가졌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20세기가 시청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촉각(터치)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이제는 기업들이 촉각을 외면한 채 비즈니스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37호(9월 15일자)는 촉각을 활용해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집중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뉴발란스, 테디베어, 할리데이비슨의 공통점
할리데이비슨은 독특하면서도 요란한 배기음과 남성적 외형 등으로 오토바이 시장의 최강자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고영건 교수는 “할리데이비슨이 진짜로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바로 특유의 진동에 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에 따르면 할리데이비슨의 시동을 걸면 엔진이 차대에서 2∼3cm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촉감이 둔한 남성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면서 ‘중독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1982년 처음 출시된 ‘뉴발란스 990’은 발의 움직임에 지지대 역할을 해주고 발목 꺾임 현상을 막아주는 기능을 러닝화 최초로 도입했다. 특히 발바닥 부위의 촉각 정보와 다리근육의 움직임이 유기적 연관성을 갖는다는 원리를 활용해 소비자들이 신발을 신을 때 편안한 촉감을 느끼도록 유도했다. 뉴발란스는 현재까지도 미국 내 생산을 지속하며 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드러운 촉감의 테디베어는 오직 ‘촉각’ 그 자체로 승부한 제품이다. 특히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는 심리적 장난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만지기만 해도 애착이 커진다
한 실험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머그컵의 가격을 매기도록 했다. 머그컵을 만지게 한 그룹과 눈으로만 보도록 한 그룹으로 나눴는데, 머그컵을 직접 만져본 이들이 더 높은 가격을 매겼다. 이는 자신이 보유한 물건에 더 큰 애착을 갖는 ‘보유 효과’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법적 소유권이 없는 상황이지만 단순히 접촉하기만 해도 해당 제품을 보유했다는 무의식이 발생해 더 높게 가치를 평가한다는 점을 이 실험이 입증했다. 대형마트 등에서 제품 포장지에 구멍을 뚫어 소비자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마케팅 기법이다.
○ ‘촉각 비즈니스’의 무한한 기회
촉각의 중요성을 꿰뚫어 본 많은 기업들은 큰 성공을 거뒀지만 다른 기업에도 여전히 엄청난 기회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히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는 ‘촉각 비즈니스’의 지평을 더욱 넓히고 있다. 고영건 교수는 “노인은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터치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며 “이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 큰 기회가 열려 있다”고 조언했다. 노인들에게 마사지를 해주면 심신의 기능이 개선되고 심지어 치매도 호전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넘어 실제 치료가 가능한 부분에까지 촉각 비즈니스가 발전해갈 수 있다. 또 촉각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성적 쾌감’의 구조를 분석해 다양한 산업에 활용하면 ‘해피 비즈니스’ 시장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고 교수의 전망이다.
최근 LG전자의 휘센 에어컨 광고 역시 좋은 사례다. 여 교수에 따르면, 기존 에어컨 광고는 시원한 촉각적 상상을 오직 시각에 의지해서만 보여줬지만 최근 휘센 광고에서는 만년설에 둘러싸인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청각과 시각 모두를 활용해 ‘촉각’을 공략하는 방법을 썼다. 촉각은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마케팅 차원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