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교회는 교회 일에나 신경 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교회가 세속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이상 불가피하게 속세의 권력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현대 가톨릭의 역사만 봐도 프랑스 교회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종교 사학(私學)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근대적 자유가 낳은 생명 경시 풍조, 즉 낙태 같은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로 말하자면 천주교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주교급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 가보면 한국의 모든 주교보다도 높은 신부가 한 명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바로 주한 교황청 대사다. 그는 아무리 젊어도 나이든 한국 주교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한다. 주교 임명 제청권을 갖고 총독처럼 군림하는 주한 교황청 대사,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위계질서를 가진 천주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회는 제 생긴 모습을 보고 남 얘기를 해야 하는 법이다.
천주교 사제든 신자든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야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교회의 힘을 빌려 사제들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시국선언은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종교와 정치의 긴장을 깰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군사 독재 시절 교회가 민주주의의 소도(蘇塗) 같은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당이 제 기능을 찾고 시민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교회는 더이상 그런 역할을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군사 독재 시절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을 높이 사면서도 오늘날 그 집단이 점점 더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교회를 둘러싼 정치 환경이 변한 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가 얼마 전 천막농성 중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방문해 “지난 대선은 원천 무효”라고 말했다. 대선 불복이라는 비판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김 대표를 순간 당황하게 만든 발언이었다. 함 신부를 볼 때마다 거추장스러운 신부의 옷을 벗고 차라리 정치인이 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민주주의라고 말하면 될 것을 민주주의와 친하지도 않은 성부나 성자나 성령을 들먹이면서 정의 운운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전임 보수파 교황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프란시스코 1세의 최근 강론 중 ‘훌륭한 가톨릭 신자는 정치에 개입한다’는 발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강론의 내용을 끝까지 읽어 보면 그 정치 개입이라는 것은 정치가들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들이 사악한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좋은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최고의 정치 개입이라는 것, 이것이 강론의 결론이다.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에 참여한 사제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교황의 말씀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