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림 한국유방암환우회 합창단 대표
암 진단을 받은 후 대부분의 암 환우들이 겪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나 또한 2001년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유방암 3기’라는 진단에 이러한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분노 속에서는 주위 사람들과 모든 연락을 끊은 채 지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비너스회’라는 유방암 환우회를 만나 또 다른 세상과 접하게 되었다. 워낙 매사에 고지식한 편인 나는 암 환우가 되어서도 의사의 말을 잘 듣는 모범 환자가 되어 병원의 교육지침에 따랐다.
우리나라 여성 암 중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유방암은 병원별로 환우회 모임이 특히 활발하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모임이니 비록 암 환우들의 모임이긴 하지만 그 씩씩함과 용맹스러움이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내게도 그 씩씩함이 더해졌다. 처음 몇 년 간은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진정한 유방암 환우가 되어 가슴을 졸이기도 했었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눈물짓기도 했었지만 유방암 환우인 ‘우리들’과 함께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과 계속 만나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도 사양했던 내가 ‘한국 유방암 환우회 합창단’에서 8년째 합창을 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신나게, 또 열심히. 그러다가 2년 전, 합창단원 9명과 히말라야의 고사인쿤드 호숫가에서 ‘I HAVE A DREAM’을 합창하며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히말라야에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떠나기 전, 왜 하필 히말라야인가를 우리끼리 이야기하면서 ‘나의 도전’과 ‘암 환우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원대한 목표까지 간직하고 떠났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그날의 산행이었지만 피로와 고통을 견디며 걷노라니 결국 그날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항암의 고통이었지만 참고 견디노라면 결국엔 그 끝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처럼….
필수영양분을 골고루 잘 섭취하면서 운동으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건강관리 방법 중 하나이다. 그래서 유방암에 걸리기 전에는 북한산조차 가보지 않았던 환우들도 자주 산에 오른다. 그러한 환우들과 5년여 전부터 매월 전국의 자연휴양림을 1박 2일로 찾아다니며 산을 오르고 있다. 기차와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천천히 하는 여행이다. 처음에는 30분도 못 가서 주저앉았던 환우들이 이제는 1500여 m의 겨울 설산도 몇 시간씩 오르내리게 되었다. 휴양림 깊은 숲 속의 통나무집에서 각자 조금씩 가져온 맛난 음식과 뜨거운 차를 달여 마시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들. 항상 마지막 결론은 ‘유방암’에 관한 대화로 끝이 나지만, 1박 2일 동안의 여행과 운동은 체력단련과 더불어 지나간 한 달 동안의 시름은 모두 날려버리고 다음 한 달 힘차게 일상을 꾸려갈 기운을 우리에게 안겨주곤 한다.
‘비구름 없는 하늘이 그 어디에 있으며, 고난이 없는 인생이 그 어디에 있으랴… 인생의 뜻을 알기에 내 마음 훨훨 날아요.’
요즘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합창곡이다.
그렇다. ‘암 진단과 투병’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난이었기에 그 고난 속에서 인생의 뜻을 좀더 깨닫게 되었을까. 노래 가사처럼 또 다른 세상을 찾아서 내 마음은 지금도 가을 하늘을 훨훨 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