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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반드시 지킬것”… 증세논의 물꼬 트나

입력 | 2013-09-27 03:00:00

[2014년 예산안 357조7000억]
■ 朴대통령, 국민대타협위 구성 제안




새누리당 곤혹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앞줄 오른쪽), 최경환 원내대표(황 대표 왼쪽)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최 원내대표는 “어르신들에게 기대한 대로 받지 못하게 한 것은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6일 기초연금 공약 축소에 대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은 자못 무거워 보였다. 박 대통령이 이날 읽은 5000자에 이르는 긴 발언은 실무진이 올린 초안 내용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직접 쓴 것과 다름없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만큼 사과 발언의 수위와 내용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기초연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겠다는 생각 하나로 메시지를 썼다”고 말했다.

○ “기초연금은 오래된 소신”

박 대통령은 이날 기초연금을 설명하며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소신’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 그는 “기초연금안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부터 주장해온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이라며 “2008년에 도입한 기초노령연금은 급여액이 9만6000원으로 너무 적어서 이것으로는 어르신들의 생활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 당선 후 각계각층 전문가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모든 어르신께 20만 원을 지급할 경우 2040년에는 157조 원의 재정소요가 발생하게 돼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넘기는 문제가 지적돼 소득상위 30%는 제외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 증세 논의 불붙나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은 지켜야 한다는 저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며 기초연금의 수혜자가 어느 수준이 적당한지 국민대타협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해보자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기초연금 제2라운드에 돌입한 모양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민들이 증세를 해서라도 (소득 상위 30%를 포함한)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주자고 하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복지 수준과 조세 부담에 대한 국민대타협을 추진하겠다”고 처음 밝힌 적이 있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대선 출마 때 국민대타협을 공약했다가 대선 공약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조세 부담 수준을 바꾸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더 강조하지는 않았다”며 “재원이 부족해 기초연금 공약을 지키기 어려워지자 다시 이 화두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증세를 해서라도 공약대로 기초연금 수혜자를 65세 이상 모든 국민으로 확대할 수 있지만 그전에 사회적 합의를 거치자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 수준을 얼마나 높일지, 복지 수혜 대상을 누구로 할지, 세 부담은 어디까지 늘릴지 어느 하나 쉽게 합의될 수 있는 것이 없다. 야당과의 합의도 쉽지 않다. 청와대도 아직 국민대타협위의 구체적인 밑그림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세수 부족으로 인한 내년도 예산안 편성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우선적으로 재원을 배정해 경제를 살려야 하는 절박함을 담았다”며 “2017년까지 재정건전성을 단계적으로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신뢰 이미지 상처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 수정의 불가피성을 설명했지만 트레이드마크인 ‘신뢰정치’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공약의 차질 없는 실천을 새 정치의 시작으로 강조했고 임기 초 이는 국민들에게 신뢰의 이미지를 쌓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세수 결손 등으로 인한 재원 부족 우려와 함께 증세 없이는 대선 때 내세운 복지공약 이행이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음에도 공약 재조정은 없다고 쐐기를 박는 데만 무게를 둬 왔다. 이것이 결국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다.

8월 세제개편안 논란에 이어 이번에도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서 대통령 외에 국가정책을 책임 있게 대변할 장관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청와대에선 ‘박다르크’(박근혜+잔다르크) ‘박보원’(박근혜+넘버원)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국정에서 대통령 혼자밖에 안 보인다는 우스갯소리다.

동정민·윤완준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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