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예산안 357조7000억]■ 재원 부족에 공약 수정
정부는 특히 관심의 초점이었던 복지 및 교육 예산을 일부 삭감하는 등 고심 끝에 절충안을 택했지만 세수 구멍이 커지면서 앞으로도 진퇴양난의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실에 맞게 전면적으로 공약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복지 및 교육 공약 일부 후퇴
대표적으로 고교 무상교육 도입이 연기되고 대학 반값등록금 예산이 줄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2014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시작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내년 예산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박 대통령 임기 내에 고교 무상교육을 완성하겠다는 원론적인 계획만 밝혔다. 성삼제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은 “고교 무상교육은 완성 연도를 기준으로 연간 2조7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국고와 지방비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복잡한 문제가 있어 내년 도입을 유보했다”고 밝혔다.
반값등록금은 연간 7조 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가 4조 원, 대학이 3조 원을 부담한다는 계획을 밝혀왔다. 내년 예산안에서는 국가장학금 예산이 소요액보다 8150억 원 부족한 3조1850억 원만 편성됐다. 소요 예정액의 80%만 반영된 것.
대입 개편안과 맞물려 관심을 모았던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지원사업 예산 역시 예산 협의 과정에서 3분의 1로 줄어든 410억 원만 반영됐다.
홀몸노인이나 차상위 계층에 장기요양보험을 지원하기로 한 공약이나 한부모 자녀 양육비 지원을 5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올려주는 공약도 내년 예산에서 빠졌다.
반면 셋째 아이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은 내년 예산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복지 공약 이행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셋째 아이 대학등록금을 지원받는 수혜계층이 가장이 40, 50대인 중장년층 가구다보니 당장 출산 장려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 재정 악화, 커지는 세수 구멍 ‘사면초가’
복지 및 교육 공약 축소에도 이번 예산안으로 정부의 재정 여건은 한층 더 취약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당초 지난 정부가 약속했던 균형재정 달성 시기는 2013년이었지만 올해 재정수지는 더 악화됐다. 국가채무비율을 20%대로 낮추겠다는 계획도 다음 정부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정부가 밝힌 ‘2013∼2017년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1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6.3%로 지난해 전망인 28.3%에 비해 큰 폭으로 악화됐다.
더 큰 문제는 임기 첫해부터 20조 원의 재정 ‘펑크’가 나면서 앞으로도 매년 그 이상의 돈이 모자라게 될 판이라는 점이다. 이날 정부의 세수 추계에 따르면 2016년 국세 수입은 252조 원으로 1년 전 전망(280조 원)에 비해 30조 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이 같은 추계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3.9%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토대로 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3.6%), 한국경제연구원(3.4%), 골드만삭스(3.5%)의 전망처럼 내년 성장률이 3%대 중반에 머문다면 세금 납부액도 크게 줄어든다.
경제 전문가들은 엄청난 위기 상황도 아닌 마당에 무리한 적자예산을 편성한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재정적자는 한번 늘어나면 좀처럼 줄이기 어려운 만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더 빡빡하게 예산을 짰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불요불급한 공약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이 같은 난맥상을 풀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년 연속 대규모 적자예산을 짠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며 “급박한 위기라면 몰라도 함부로 건전재정 기조를 이탈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한국재정학회장)은 “내년 세수는 정부 전망보다는 다소 낮아지게 될 것”이라며 “복지 공약을 제대로 수정하지 않으면 향후 재정적자의 폭은 굉장히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균·이샘물·문병기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