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령-배임 혐의 파기환송
○ 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나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김 회장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며 법리상 논란이 된 부분을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배임죄에서 재산상 손해 발생 여부를 엄격하고 세밀하게 입증해야 한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전체적인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정당한 절차 없이 다른 계열사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부실 계열사에 불법적인 지원을 지시하는 행위는 경영 판단의 원칙이라는 명목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화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위장 계열사에 지급보증, 연결자금을 제공한 혐의에 대해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실질적인 재산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김 회장 측에서 구조조정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하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구조조정이 성공했다고 해서 불법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1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1심은 검찰이 기소한 8994억 원 상당의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봤지만, 항소심은 그만큼의 큰 위험성을 안고 있던 부당거래라고 인정한 것이다.
○ 김 회장에게 유리할까 불리할까
법조계에서는 김 회장이 상고 기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긴 했지만 반드시 유리한 선고 결과라고 보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유무죄 부분이 상당 부분 파기된 것처럼 보이지만 판결문을 자세히 뜯어보면 극히 일부에 대한 판단만 다시 하라는 것”이라며 “일부 손해액 재산정과 부동산 감정평가 과정에서 김 회장 측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는 있지만 유무죄 자체를 뒤집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항소심과 큰 차이가 없는 판결이라고 본다”며 “위장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을 유죄로 인정한 항소심을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전체 범죄 금액의 일부만 재산정될 것으로 보여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화 측은 선고에 대해 말을 아끼며 “변호인과 상의해 파기환송심 준비에 만전을 다하겠다”며 “현재로선 전망을 내놓기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화 측은 내심 형사사건에서 파기환송된 것 자체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지급보증 중복을 두 번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취지가 다른 케이스에 적용돼 배임액이 크게 줄면 집행유예의 길도 열려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김 회장의 재판은 파기환송심 6개월, 재상고심 6개월로 1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확정됐고, 상고심에서 파기환송된 부분만 다시 심리하면 돼 선고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부실 위장 계열사에 9000억 원 상당의 지급보증, 연결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당지원하고, 부동산 저가 매각, 다단계 분할·합병 등의 방법으로 계열사를 정리해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8월 1심은 계열사 손해액 3024억 원을 인정해 징역 4년, 벌금 51억 원을 선고하고 김 회장을 법정 구속했다. 4월 열린 항소심은 손해액을 1797억 원만 인정하고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강경석·박진우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