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357조7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정부 수입보다 지출을 더 늘려 잡아 25조9000억 원의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대의 적자 규모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경제 활성화, 국정과제 이행, 재정건전성 유지라는 세 가지 과제 가운데 특히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재정 여건이 별로 좋지 않지만 지출을 늘려 경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설명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엄청난 돈을 풀어 미국 경기를 부양한 것처럼 경제가 좋지 않을 때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으로 경기 부양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제 활성화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재정 건전성만 나빠진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 편성에서 경제 활성화와 직결되어 있는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각각 1.7%, 4.3% 줄였다. 반면에 경제 활성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보건 복지 고용 분야 예산은 올해보다 8.7% 늘려 가장 많이 증액했다.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 예산안을 짰다는 정부 설명과 배치된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3.9%로 잡고 국세 수입도 올해보다 3.9%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성장률을 올해(2.7%)보다 크게 높여 잡은 것은 너무 낙관적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이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하고 이에 따른 신흥국들의 경제 위축으로 수출이 줄어들면서 한국 경제가 여러 곤경에 빠질 우려가 없지 않다. 현 부총리는 “증세는 안 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대신에 비과세와 세금 감면을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7조6000억 원의 세수를 늘린다는 방안을 예산안에 반영했다. 정부는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과연 정부가 예측한 대로 세금이 걷힐지는 의문이다.
나라 안팎의 상황 변화에 대비하려면 재정 건전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돈 쓸 곳은 많은데 나라살림이 빠듯하니 공공부문부터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가 있다.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의 봉급을 동결하고 업무추진비를 10% 삭감하기로 한 것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정부의 수입 목표를 달성하려면 민관(民官)이 합심해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도리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