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우리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저렇듯 천천히 흐르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아폴리네르가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을 그리며 이 시를 썼다는 설이 있다.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가 옛사랑의 장소에서 사랑과 인생의 깊은 맛을 곱씹는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그 순간 실제로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테다. 비애감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위안을 주는 저녁 종소리. 화자는 가슴이 찢어지지만, 실연의 처절한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을 삶의 한 양태로, 자연의 이치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피 끓는 한창 나이에 이렇게 정신이 성숙하기도!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