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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연수]누가 진짜 이승만인가

입력 | 2013-09-28 03:00:00


신연수 논설위원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상 보기 드물게 지성적인 정치가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형안을 갖추었고, 해방 후 혼란상태의 남한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내정자의 책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그는 사(私)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고 출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민족문제연구소의 동영상 ‘백년전쟁’)

이승만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를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을 비판한 진보진영의 ‘백년전쟁’에 이어 보수진영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좌우의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한 토론은 드물고 비(非)이성적 언어와 행동을 동원한 투쟁이 대부분이다.

진보진영은 교학사 교과서가 이승만 박정희 등의 업적을 길게 묘사했다고 해서 ‘친일 독재 미화’라며 검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공격한다. 그러나 한국이 최빈국에서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민주화를 이룬 데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언론의 자유를 기초하고 남한을 공산주의 위협에서 지켜낸 이승만의 공이 크다.

광복 후 북한에서 유엔이 감독하는 총선거가 불가능하고 사실상 소련이 김일성 정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한반도 남쪽만이라도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국제정치에 대한 그의 안목 덕이었다. 잘못한 게 많더라도 이승만을 분단의 원흉이나 독재의 화신으로 평가하는 것은 건국 대통령에 대한 온당한 대접이 아니다.

반대로 이 교과서를 집필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좌파진영이 교육 언론 예술 출판 학계의 60∼90%를 장악하고 있다. 현 국면이 유지되면 10년 내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전복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진보진영이 모두 체제를 부정하는 종북 세력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체제 부정 세력에 의해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지도 않다.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사회주의 세력이 많았다. 그렇다고 무장투쟁보다 외교나 실력양성 노선이 더 현실적이었다는 보수진영 일각의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10배가 넘는 왜군을 물리쳤다. 우리는 약소민족이어서 강대국에 기대어 독립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변명이야말로 자학적 패배주의다. 광복 후 공산주의와 싸운다며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한 것 역시 과오로 기록해야지 ‘어쩔 수 없었다’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교학사를 제외한 7종의 교과서는 한국의 독재정권을 비판하면서 공산주의의 실상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아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을 왜곡할 수 있다. 기업에 대해서도 ‘정경유착’ ‘부정부패’ 같은 부정적 묘사가 많다. 경제인들의 창의적 노력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다. 청소년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서도 수정하는 것이 옳다.

현대사 연구자들은 좌우통합 교과서를 만들어 보라. 역사 해석은 학자마다 다르고 새로운 사료가 발굴될 때마다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칠 교과서만큼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부분은 양쪽 시각을 다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체제가 다른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려면 우리 안에서부터 타협하고 통합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