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뉴욕 개인전 ‘완판’… 조영남 작품 호당 50만원
이들은 누굴까. 바로 연예인 출신 화가들이다. 이른바 ‘아트테이너’(아트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라 불리는 ‘예술 하는 연예인’들이다. 11일 시작된 2013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에는 조영남 하정우 구혜선 최민수 유준상 등 연예인 21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스타크라프트’전이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김종근 홍익대 겸임교수는 “전시 참여 연예인 중에는 미대 출신도 있지만 최근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이도 많다”며 “예전엔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연예인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직접 작업에 참여하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조영남 그림값 폭등하고, 하정우 작품 완판되고
‘충무로 대세’ 하정우는 미술시장에서도 잘나간다. 2004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잭슨 폴록과 장미셸 바스키아 등의 작품을 따라 그리며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다는 하정우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개인전을 5회 열었고 미국 뉴욕, 홍콩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다. 특히 올 3월 뉴욕 전시에서는 전시작 16점이 모두 팔려 화제가 됐다. 데뷔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업량이 상당해 지금까지 전시로 공개한 작품만 100점이 넘는다. 그는 10월경 서울 청담동 까르띠에 사옥에서 대대적인 개인전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정우의 아버지인 배우 김용건은 연예계의 유명 컬렉터다.
구혜선은 2009년 서울 인사동의 첫 개인전,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두 번째 개인전을 포함해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4회 열었다. 올해 5월과 8월에 홍콩과 중국 상하이에서 초청 전시를 했고, 다음 달 다시 홍콩에서 초청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그녀는 배우와 화가 외에도 두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감독이자 다섯 개의 싱글 앨범을 낸 싱어송라이터, 세 권의 책을 쓴 작가이다.
이들 외에도 배우 강석우 김영호 김혜수 심은하 유준상, 가수 나얼 배일호 솔비 최백호, 개그맨 임혁필 등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스타의 그림, 작은 것이 잘 팔리는 이유
유명 연예인 화가의 작품은 개인전 말고도 자선경매 같은 비영리 행사를 통해 많이 소개되고 팔린다. 올 7월 서울옥션에서 주최한 자선경매에서는 하정우의 20호 인물화가 380만 원, 가수 나얼의 콜라주 작품이 200만 원, 배우 김영호의 사진 작품이 110만 원에 낙찰됐다. 5월 서울오픈아트페어 자선판매에서도 강석우의 100호와 30호 유화 작품이 각각 700만 원과 500만 원, 하정우의 25호 인물화 작품 두 점이 각각 500만 원에 판매됐다.
연예인 화가 작품의 경우 대작보다는 주로 소품이 선호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전문 컬렉터가 아니라 대중이 소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화랑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2∼3년 사이 연예인 작가의 전시회가 많이 열리고 작품이 적지 않게 팔리고 있다”면서 “컬렉터는 주로 스타를 좋아하는 넓은 의미의 팬이 많으며 1000만 원 이하의 작품을 중심으로 팔린다”고 설명했다.
소육영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팀장은 “온전히 작품만으로 명성을 쌓아야 하는 일반 작가와 달리 연예인 출신 작가는 이름이 알려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데다 사회적 네트워크도 잘 갖춰져 있어 그림을 알리기에 유리하다”면서 “다만 현재까지는 연예인 화가의 작품을 투자를 위해 사는 사람은 드물며 해당 연예인의 인기가 시들해질 경우 그림값이 유지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술시장 애널리스트인 이호숙 효성그룹 아트사업부 실장 역시 “작품의 진짜 시장 가치는 판매된 그림이 다시 거래되는 2차 유통시장에서 논할 수 있는데 조영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연예인 작가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오래해 온 게 아니어서 아직까지 시장 가치를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중문화 스타들이 화가 겸업을 하고 그 그림이 비싼 가격에 팔리는 현상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카데미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앤서니 퀸, 영화 ‘이지 라이더’의 배우 데니스 호퍼,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비틀스 출신의 폴 매카트니와 포크 가수 밥 딜런, 록 가수 데이비드 보위,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도 그림을 그렸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스타들도 1960년대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의 영향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주목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스타들은 미술에 관심을 갖는 걸까. 개인적인 차원부터 사회적인 차원까지 해석은 분분하다. 김종근 교수는 “그림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고 자유로운 측면이 많아 연예계 생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연예인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연예인이 예술가로서의 권위를 획득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영국의 미술비평가인 존 워커는 저서 ‘유명짜한 스타와 예술가는 왜 서로를 탐하는가’(원제 Art and celebrity)에서 “스타와 예술가는 공생관계를 통해 명성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유명인은 예술가가 가진 문화적 자본을, 예술가는 유명인의 사회적 자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스타의 예술 활동은 자신의 문화적 자본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팝아티스트인 강영민은 ‘아트테이너’라는 용어를 ‘소셜테이너’에 빗대어 “사회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소셜테이너라면 내면으로 자기 목소리를 갖는 게 아트테이너”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예인은 누군가를 즐겁게 해줘야 하지만, 미술가를 비롯한 작가는 자의식에 따라 스스로 즐거워하는 일을 생산하는 사람이라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소셜테이너가 사회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반면 아트테이너는 그런 위험이 없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자의식이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아트테이너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도 갈린다. ‘미술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기성 작가들 사이에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시장에서 ‘밥그릇 빼앗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미대 교수는 “아마추어 수준의 그림이 이름값만으로 과대평가되는 현실이 일반 작가들에게 박탈감을 안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연예인 화가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소육영 팀장은 “과거에는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보는 게 전부였다면 이제는 직접 작품에 참여하거나 그림을 사는 식으로 대중이 미술을 소비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면서 “이런 경향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연예인 예술가가 나오고 이들의 작품을 찾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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