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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中산골마을 휩쓴 문혁의 광풍… 그리고 인간군상

입력 | 2013-09-28 03:00:00

◇바람 없는 나무/리루이 지음·배도임 옮김/343쪽·1만3000원/SH북스




현대 중국 지식인들에게 문화대혁명 시기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암흑기다. 부모가 자식을, 학생이 선생을 고발해야 했던 이념 과잉시대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작가 리루이(李銳)는 이 상처와 정면으로 대면하자고 말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중앙 정치와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질서대로 살아온 중국 벽촌의 난쟁이 마을. 골수 마오주의자 자오웨이궈가 혁명과업을 완수하겠다며 자원해 들어온 지 6년 뒤인 1969년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다.

“계급의 적을 박멸하라”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교시가 떨어지면서 마을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진다. 인민공사 주임 류창성은 ‘부농(富農)분자’를 색출한다며 주민들을 윽박지르고, 자오웨이궈도 가난한 여성(친누안위)을 성적으로 공유하는 이 마을의 악습을 혁파하려 든다. 하지만 마을을 통째로 개조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성과도 못 내고 주민의 반발만 부른다.

주민의 눈에 비친 당 일꾼은 인습을 타파한다며 어려운 말로 자신들을 들볶거나(자오웨이궈),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기 바쁜 한심한 사람(류창성)이다. 난쟁이 주민과 당 일꾼의 키 차이는 메우기 힘들 만큼 커지는 이들의 갈등에 대한 은유다. 한 주민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 제목은 문혁을 일으키며 “나무는 고요하고 싶으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던 마오의 말을 비틀어 문혁이란 바람에 시달린 것은 마오가 아니라 민중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마오주의의 광신이 불러온 문혁의 비극을 고발하면서도 순진한 민중의 편에만 서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가폭력과 반인륜적 관습, 유토피아로의 열망과 생존 본능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다 스러진 이름 없는 이들에 대한 진혼곡으로 읽힌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