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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 MB5년]‘무대와 공주’ 2

입력 | 2013-09-28 03:00:00

김무성 쏘아본 박근혜 “그렇게 장관이 하고 싶으세요?”




2009년 6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여의포럼’ 1주년 기념식. ‘여의포럼’은 김무성이 만든 친박계 의원 모임이었다. 한 달 전 박근혜는 MB와 친이계의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움직임을 말 한마디로 무산시켰다. ‘공주’는 ‘무대(무성 대장)’의 독자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동아일보DB

급히 미국 샌프란시스코행(行)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서너 시간 뒤에 출발하는 항공편이 있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김효재 의원은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내가 비행기에 탄 다음 대표에게 보고하라.” 비서실 부실장에게는 그렇게만 얘기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초청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중인 박근혜 전 대표가 과연 만나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만나서 오해를 풀어야 했다. 신문사(조선일보) 사회부에서 잔뼈가 굵은 김효재였다.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고 믿었다.

2009년 5월 7일(현지 시간) 샌프란시스코 웨스틴세인트프랜시스 호텔. 김효재는 박근혜와 마주 앉았다. 누군가가 5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30분 동안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구상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효재의 표현을 빌리면 ‘죽을힘’을 다해….

박근혜는 단 두 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그건 어제 유정복 의원(현 안전행정부 장관)이 이미 말씀하셨고요.” “그것도 어제 이정현 의원(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말씀하셨잖아요!”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자유경선을 통해 선출하는 자리고, 누구에게 밀어주고 몰아주는 방식은 당헌 당규를 어기는 일이라고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는 반문이었다. 김효재는 ‘벽’을 느꼈다. 박근혜는 자기 할 말만 할 뿐, 김효재와 단 한마디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은 MB(이명박)였지만, ‘여의도 대통령’은 박근혜였다. 김효재에겐 MB보다 훨씬 가까이 있는 권력이었다. 게다가 박근혜의 스탠퍼드대 강연 및 실리콘밸리 방문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일정이었다. 2007년의 경선 패배를 딛고, 2012년 대선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자리였다. 샌프란시스코 일정엔 새로운 박근혜의 비전을 선보이겠다는 의욕과 전략이 깔려 있었다. 박근혜는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동북아 평화협력체’ 구성을 제안했고,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역설했다. 실리콘밸리 방문은 앞으로 ‘창조경제’가 박근혜 브랜드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그런데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아이디어가 터져 나와 박근혜의 걸음걸이에 재를 뿌렸다. 거기에다 김효재가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와 재를 펄펄 날렸으니….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아이디어는 외형상 박희태의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화합카드였다. 특히 일주일 전쯤 치러진 4·29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5 대 0의 참패를 당하자 박희태는 당을 추스르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5월 6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조찬회동에서 MB의 추인까지 받았는데, 바로 다음 날 박근혜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일축한 것이다.

김효재의 기억. “사실 MB 5년 동안 ‘여의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였습니다. 나도 여의도 국회의원인데 (그렇게 찾아간 것이 개인적으로는)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구상의 전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매듭은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제안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걷어차 버리면) 대통령의 체면은 뭐가 됩니까? 만에 하나 얘기가 잘되면 모두가 좋은 것이고, 잘 안 돼도 박희태 대표가 나만 자르면 되니까….”

박근혜의 단호한 태도에 동행했던 친박 의원들도 당황했다. 김무성과 가까웠던 이진복 의원(부산 동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진복=“대표님, 김무성 의원도 마음이 불편할 겁니다. 전화라도 해 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박근혜=“(빤히 쳐다보며) 그쪽에서 전화가 왔던가요?”

이진복=“아니, 제가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박근혜=“….”

박근혜는 더이상 말을 않고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객실까지 쫓아가서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진복은 ‘(김무성이라는) 맹장염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이재오 의원이 ‘왕의 남자’였다면, 김무성은 ‘공주의 남자’였다.(5월 25일자 ‘비밀해제 MB 5년―무대와 공주’) 하지만 김무성은 동지가 되려 했지, ‘신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MB 정부 출범 직후 특임장관 제안이 왔을 때도 그랬다. 맹형규 정무수석으로부터 MB의 뜻을 전해듣자마자 박근혜에게 ‘보고’하고, ‘상의’했다. 다른 장관이라면 몰라도 특임장관, 그러니까 예전의 정무장관 자리라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수파였던 통일민주당의 YS(김영삼)가 다수당이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과 합당한 뒤 당시 상도동계 좌장이던 최형우 의원이 정무장관을 맡았던 기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김무성=“(MB의 제안을 설명한 뒤) 받아들이는 게 좋겠습니다.”

박근혜=“제 생각은 달라요.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

김무성=“왜 (안 된다고) 그러십니까?”

박근혜=“김 의원님은 친박의 좌장이시잖아요?”

김무성=“그래도 우리 것만 지키는 수비 위주보다는 외연을 넓혀 나가는 게 친박 진영이나 대표님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박근혜=“(김무성을 빤히 쳐다보며) 그렇게 장관이 하고 싶으세요?”

박근혜의 마지막 말에 김무성은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정나미가 떨어졌다. “친박의 좌장이시잖아요?”라는 말도 “밖에서는 친박의 좌장으로 알려져 있잖아요?”라는 어조에 가까웠다. 원내대표 추대 제안이 왔을 때 박근혜에게 ‘보고’하고, ‘상의’하지 않은 것도 그때 기억 때문이었다.

사실 원내대표 제안은 일찍부터 있었다. 김무성과 이상득(SD)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은 각각 420호, 421호였다. 바로 옆방이었다. MB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의 18대 총선 때 김무성은 공천에서 ‘배제’됐다. 물구나무를 서는 심정으로 살아 돌아왔고, 사무실도 바로 옆방이었지만 SD는 위로 한마디 없었다. 그러다 그해 가을쯤, SD가 방으로 찾아와 “나는 공천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때부터 왕래가 시작됐고, 2009년 2월 SD는 김무성에게 원내대표 얘기를 꺼냈다.

특임장관 제안이 왔을 때도 그랬지만, 김무성은 박근혜가 자기를 ‘동지’로서 신뢰하지 않는 듯한 언행(言行)을 보일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그즈음 이런 말도 했다. “박근혜 주위에서 ‘김무성이 자기 정치를 하려고 한다’고 씹어대는데, 정말 미치겠다. 내가 (정권 재창출이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가 아닌) 개인 정치를 하려면 왜 박근혜 옆에 있겠느냐? 이명박하고 친한데, 진작 이명박하고 손잡았지.”

개인사로 따지면 그랬다. 김무성은 기업가 집안이다. 형님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오래 지낸 김창성 전방 회장(현 명예회장)이고, 그 위의 누님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전남방직 창업자인 부친도 1970, 80년대에 경총회장과 전경련 부회장을 지냈다. 가계도만 봐도 현대건설 출신의 MB와 더 가까울 수 있는 환경이다. 게다가 고향도 MB와 같은 경북 포항이다.

“그런데도 박근혜를 택했는데 왜?”라는 게 김무성의 불만이었고, 서운함이었다.

MB 5년 동안 박근혜는 ‘무대(김무성 대장)’에게 애증(愛憎)의 대상이었다. 박근혜가 ‘메탄하이드레이트’(해저나 빙하 아래서 메탄과 물이 높은 압력으로 인해 얼어붙은 얼음 형태의 고체)라면, 무대는 화르륵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곤 하는 짚불이었다. 박근혜에 대한 무대의 애증도 그렇게 화르륵 타올랐다가 꺼지고, 다시 타올랐다가 꺼지곤 했다.

원내대표 추대 제안이 그렇게 날아가고, 이후 세종시 수정안 파동까지 겹치면서 김무성은 점점 ‘탈박(脫朴)’을 굳혀간다. 그래도 애증은 여전했다. ‘탈박’이 돼서야 이듬해 5월 원내대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김무성이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여의포럼’ 회원들과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길. 포럼 간사인 유기준 의원(부산 서)이 귀국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데 김무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김무성=“선물은 몇 개나 사면 되노?”

유기준=“○○○, ××× 선물만 사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무성=“박근혜 꺼는 와 없노?”

유기준=“아, 그것도 챙길까요?”

김무성=“(짐짓 화를 내며) 야, 박근혜 꺼도 하나 챙기라(챙겨라)!”

귀국 후 이혜훈 의원(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박근혜에게 이 얘기를 전했다. 박근혜가 “그래요?” 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김창혁 선임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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