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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사회 양극화가 부른 日사회 파괴본능 고발”

입력 | 2013-09-30 03:00:00

‘결괴’ 한국어판 낸 日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편소설 ‘결괴’는 2008년 일본 도쿄 도심 아키하바라에서 사상자를 17명이나 낸 무차별 살상 사건의 발생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화제가 됐다. 문학동네 제공

평범한 시민이 납치돼 살해당하고, 수도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중동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런 사건의 무대가 일본이라면?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일식’의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의 신작 장편 ‘결괴(決壞)’의 얘기다. 이 책은 2008년 일본 출간 직후 도쿄 한복판인 아키하바라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무차별 살상 사건이 터지면서 사건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화제가 됐다.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27일 작가를 만났다.

“양극화의 영향으로 이른바 ‘격차사회’가 도래하면서 일본에서는 ‘내게는 미래가 없다’ ‘사회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일상에서 충실히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난, 비하하는 경향이 강한데요. 이들의 파괴 본능이 사회에 불러올 파장을 그리려 했습니다.”

소설에서 첫 희생자는 평범한 회사원 료스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인 형 다카시에게 열등감이 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행복에 감사하며 살던 그는 출장길에 스스로를 ‘악마’로 칭하는 사내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유력한 용의자는 료스케를 마지막으로 만난 형 다카시. 하지만 비슷한 살해사건이 연쇄적으로 터지고 도쿄 도심에서 폭탄테러까지 발생하면서 경찰의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악마는 자신이 사회 시스템의 ‘일탈자’라고 선언합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회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목표도 없이 ‘파괴를 위한 파괴’의 충동만 남아 있지요.”

제목 ‘결괴’는 댐이나 제방이 아슬아슬하게 버티다가 한계를 넘어 한꺼번에 무너지는 현상을 뜻한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면서 약화된 일본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절묘한 은유다. 지금 작가가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건강도는 어떨까.

“세계 금융위기와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일본 사회의 정체 현상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사회적 정체가 정치적 정체를 불러와 과거로의 회귀를 그리워하거나 민족주의 우경화로 기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극단적 우경화에 빠진 사람은 사회 전체로 보면 극소수이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흐름이지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