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의 ‘진격의 거인’이 범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거인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인간을 먹어치운다. 한창 이 만화에 빠져 있던 당시에는 밥맛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누군가 뭘 먹는 모습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부작용에 시달렸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거인의 포식 장면이 다시 떠오른 것은 희한한 왕따 문제를 호소하는 친구 때문이었다. 아이를 유명한 영어유치원에 보낸 지난해부터 너무 괴롭다고 했다. 반에서 영어 실력이 뒤처지거나 수업시간에 산만한 아이가 눈에 띈다 싶으면 몇몇 엄마가 모의를 해서 그 아이를 몰아내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다 보니 길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가 떠올랐다. 그는 초등학생 자녀와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엄마와 아이가 같이 중학교 진도의 수학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는 학원이라고 했다. 그래야 엄마가 집에서 아이의 숙제를 점검하고 선행학습을 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요즘 인기 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엄마들이 문제를 제대로 못 풀면 아이들이 무시하기 십상이라 선배는 학창 시절에도 안 하던 수학공부를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두 가지 얘기에서 난데없이 진격의 거인을 떠올린 것은 거인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유 때문이다. 생명체가 무엇을 먹는 까닭은 배를 채워 생명을 유지하거나 미각을 만족시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거인의 포식행위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집어삼킬 뿐이다.
요새 일부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는 모습이 이와 닮은 것 같다. 교육의 이유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저 남보다 먼저, 많이 배우게 하는 것이 목표가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지식을 섭취할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자기보다 못한 존재를 몰아내고 무시하는 일도 벌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진격하는 거인들이 저도 살기 위해 인간을 먹는다거나, 먹고 나서 뭔가 효과(?)라도 있다면 이 만화가 덜 끔찍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거인에게 쫓기는 인류처럼 만만치 않은 압박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한 번이라도 고민하게 해본다면 좀 덜 힘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