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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아베의 ‘여성인권’ 유엔 연설에 박수가 없었던 이유

입력 | 2013-09-30 03:00:00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7일 뉴욕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생존해 있는 지난 세기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납득할 만한 책임 있는 조치와 명예회복을 통한 아픈 상처의 조속한 치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일본 정부가 성의를 보이라는 촉구다. 전날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분쟁지역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돕기 위해 3년간 3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군위안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의식했다.

일본은 아베 총리의 연설에 대해 190여 개 유엔 회원국들이 박수 대신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한 뜻을 헤아려야 한다. 일본이 저지른 최악의 여성인권 유린행위는 제쳐두고 분쟁지역의 여성을 돕겠다고 나선 본말전도(本末顚倒)를 꼬집은 것이다.

앞서 윤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과의 회담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치유하려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강조했지만 기시다 외상은 “이미 법적으로 해결된 일”이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패소가 확정되면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오히려 우리 측에 불만을 표시했다.

일본은 이달 초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양국 정상회담을 요청하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정상회담이나 관계 개선은 어렵다.

1년 넘게 한일 관계가 최악의 경색 국면에 빠져 있는 데 대한 양국의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다. 21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축제한마당에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참석한 것도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22일 일본 내 혐한(嫌韓)시위에 반대하는 일본인들이 ‘친하게 지내요’ 등 한글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내 중심가 3km 구간에서 ‘도쿄대행진’을 벌인 충정도 헤아려야 한다.

그러나 불편한 양국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가해자인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이 진심으로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하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한일 관계 ‘리셋(재설정)’의 관건도 바로 일본이 역사문제를 직시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