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내건 지역공약 사업은 167개로 총사업비는 124조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신규 지역사업은 97개, 사업 이행에 필요한 비용은 84조 원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신규 지역공약 사업에 배정한 예산은 680억 원으로 0.08%에 그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경기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사업과 수서발 KTX 노선 연장, 대구 광역교통망 등 주요 지역사업은 한 푼도 배정받지 못했다.
돈이 많이 드는 지역공약을 뒤로 미룬 것은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같은 복지공약을 먼저 이행하기 위해서다. 한정된 나라살림과 일부 지자체장들의 과시용 사업이 들어있음을 감안하면 납득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국가기반시설이나 문화콘텐츠산업은 제쳐두고 복지만 키우면 국가 장래는 어둡다. 복지와 지방공약의 합리적인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대형 지역사업들은 뒤로 미룬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년에 신규 지역사업에 0.08%만 배정했다면 나머지 99.92%는 대통령 임기 말에 집행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차일피일 미루다가 공약을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어느 쪽인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지역공약이라고 모두 배제할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차분하게 옥석(玉石)을 가려야 한다. 경기도 GTX 건설이나 수서발 KTX 노선 연장처럼 수도권 주민의 교통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은 계속해야 한다.
정부가 복지공약을 지키기 위해 내년에 26조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 나랏빚(공공기관 채무 포함)은 올해 1000조 원을 넘어설 판이다. 복지를 포함해 중앙과 지역의 주요 공약을 합리적으로 구조조정하는 걸 두려워 해선 안 된다. 그것이 위태로운 나라곳간을 관리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