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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꿈을 만나다]가구디자이너 이현승 씨

입력 | 2013-10-01 03:00:00

진정한 가구디자이너? “제품 아닌 사람 먼저 연구해야죠”
■고교생이 만난 가구디자이너




가구디자이너 이현승 씨(왼쪽)는 최근 실내디자이너를 꿈꾸는 경북 형곡고 1학년 문이주 양을 만나 “디자이너는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TV 드라마를 볼 때면 연기자의 빛나는 피부, 매끄러운 콧날만큼이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극중 캐릭터가 사는 집을 가득 채운 세련된 가구들이다. 최근 인테리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디자인, 색감 등이 독특하거나 실용적인 가구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경북 형곡고 1학년 문이주 양(15)이 지난달 25일 가구디자이너 이현승 씨(37)를 경기 고양시에 있는 ‘체리쉬뮤지엄’에서 만났다.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 ‘신사의 품격’, KBS 드라마 ‘학교2013’ 등 극중 공간 속 가구를 다수 제작 및 지원한 가구디자인회사 ‘체리쉬’의 가구MD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씨는 10년 이상 가구 디자인을 해온 베테랑이다.

가구디자이너는 자유로운 영혼? ‘치밀한’ 계획가!

“가구디자이너가 맡은 역할은 정확히 무엇인가요?”(문 양)

“가구디자이너는 가구를 ‘디자인’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가구의 가격을 정하고, 유통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등 하나의 가구가 생산되고 소비자에게 소개되는 모든 과정을 총괄합니다.”(이 씨)

‘팔기 위한’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의 업무는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대, 가구시장 트렌드, 제작 및 유통 비용 등을 계산하는 것(플래닝·planning)에서 시작한다. 이어 해당 가구의 제작, 유통 등을 담당할 업체를 모색하는 ‘파인딩(finding)’ 과정을 거친다.

정작 디자이너가 가구디자인을 구상하는 단계(디자인·design)는 그 다음. 여러 명이 함께 작업을 할 경우에는 각자의 디자인을 모두 모아놓고 비교 및 분석해 한 가지 디자인을 선정하는 ‘인스펙션(inspection)’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디자이너들은 애초에 ‘플래닝’했던 가격대가 나올지, 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지 등을 반복해서 점검한다.

여기에 샘플을 제작(샘플링·sampling)해 실제로 해당 제품을 만드는 데 가격은 얼마가 들었는지, 적당한 시장가격은 어느 정도일지 등을 계산하는 과정(프라이싱·pricing)까지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가구가 출시(오더·order)된다. 이 모든 과정을 치밀하게 기획하는 사람이 바로 가구디자이너다.

“가구는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가구디자이너는 최신 유행의 가구를 창조함과 동시에 해당 가구의 적당한 가격, 생산적인 제조 방법 등도 고민해야 해요. 가구디자이너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계산하지요. 가격 생각 없이 자신의 취향만 고집해서는 안 된답니다.”(이 씨)

가구디자이너의 관심사? ‘美’ 보단 ‘人’!

“가구디자이너가 되려면 반드시 디자인과 관련한 학문을 전공해야 하나요?”(문 양)

문 양의 질문에 이 씨는 서슴없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자신은 영남대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해 가구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막상 현장을 겪어보니 이론적인 지식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구, 패션, 인테리어 등의 특징은 무엇인지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

이 씨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25세 때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면서부터다. 이탈리아 국립가구예술학교에 편입한 이 씨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이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책이나 이론 대신 생활에서 디자인 감각을 체득하고 있었어요. 집 벽을 형형색색으로 칠해보는 엉뚱한 행동을 하면서 말이죠.”(이 씨)

실제로 가구디자이너는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직접 개인 가구매장을 열어 자유롭게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전공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가구디자인회사, 인테리어회사 등에 취직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 정기적인 공개채용보다는 수시로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경우가 많은 가구디자인 관련 회사들은 화려한 경력보다는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니즈(needs)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적절한 단가를 맞출 줄 아는 상업적인 마인드를 고루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는 것.

“조선시대엔 없던 식탁, 침대, 소파 등이 왜 지금 와서는 널리 사용될까요? 그것은 방 한 칸에서 공부하고 밥상을 들여 그 자리에서 식사하고, 바로 이불을 펼쳐 잠드는 당시의 ‘라이프스타일’이 현재는 서재, 부엌, 거실 등 용도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서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가구디자이너는 ‘사람’을 연구해야 해요. 이를 위해 저는 평소 주식시장도 눈여겨봅니다. 경기의 좋고 나쁨에 따라 사람들의 씀씀이가 달라지고, 이는 곧 제가 구상해야 하는 가구의 종류, 크기, 가격에 영향을 주거든요.(웃음)”(이 씨)

글·사진 유수진 기자 ysj93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