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때 치른 한국사 시험… 해외 비즈니스때 큰 도움”
GS칼텍스 윤활유사업기획팀의 문성현 씨(28)는 4월 본사를 방문한 인도 바이어들을 역사 설명으로 사로잡았다. 바이어들은 공식 미팅 뒤 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라며 공감을 표했다. 문 씨는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허 씨의 유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33층 ‘지식사랑방’에 2008∼2012년 입사한 GS칼텍스 직원 5명이 모였다. 이 회사가 채용 전형에 한국사 시험을 처음 도입한 2008년 이후 입사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미국 대학에서 ‘한국사’ 대신 ‘미국사’를 배웠거나 이공계열이라 역사와 담을 쌓고 지낸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입사 때는 부담이 됐지만 그때나마 국사에 관심을 가졌던 게 지금은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유경 씨(28·여·회계팀)는 국내 대학에서 의상학을 공부하다 3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해 GS칼텍스의 문을 두드렸다. 해외 대학 출신인 그에게도 ‘한국사 시험’은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었다. 고교 시절 국사를 배웠지만 10년 전 얘기였다. 한 씨는 “입사 시험을 한 달 앞두고 귀국해 ‘한국사 자격증 3, 4급’용 책을 사서 공부했다”며 “시험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회사가 설명했지만 부담은 컸다”고 말했다.
역시 해외 대학을 나왔지만 평소 역사 다큐멘터리를 즐겨본 류승훈 씨(27·베이스오일마케팅팀)는 한국사 시험이 반가웠다고 한다. 고교 1학년 때 미국 미시간 주로 유학을 가 현지 고교를 졸업한 류 씨는 일본에서 대학을 마쳤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미국과 일본에 있는 동안 한국사에 관심이 많았다”며 “GS칼텍스가 역사관과 국가관을 중시하는 회사로 보여 더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2008년 인턴으로 입사한 이현제 대리(31·석유화학개발실)는 화학공학 전공이지만 입사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에 ‘한국문화유산의 이해’ 과목을 들었다. 그는 “GS칼텍스가 한국사 시험을 도입한다고 해 취업 준비생들이 당황스러워했다”며 “준비는 힘들었지만 고3 이후 처음으로 국사를 공부하니 뿌듯함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국가관 가진 인재 필요
한국사 시험이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까.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실제 업무에서 톡톡히 효과를 본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류 씨는 업무차 일본인이나 대만인을 만날 기회가 많다. 지난해 11월 일본 바이어들과 전남 여수공장에 갔다. 버스가 ‘여수 진남관’(전라 좌수영)을 지날 때 류 씨는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일본인들은 “가이드 같다”며 관심을 보였다. 류 씨는 “GS칼텍스는 역사관과 국가관을 중요시하는 회사다. 그런 회사일수록 신뢰를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는 말로 회사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전했다.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한 강상원 씨(29·홍보기획팀)는 “시험 준비를 하면서 국사와 세계사에 재미를 느껴 요즘도 관련 책을 즐겨본다”며 “사람을 주로 대하는 홍보기획 업무를 공학적 마인드만으로는 지금처럼 잘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우 GS칼텍스 인력운영팀장은 “내수 중심이던 회사가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확실한 국가관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사 시험을 도입했다”며 “역사의식과 뿌리의식이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채용 준비생도 좋게 평가한다”고 전했다.
한국사 공부의 장점을 경험한 GS칼텍스 직원들은 2017학년부터 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채택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미국에 유학을 가 졸업 필수과목인 ‘미국사’를 이수한 한 씨는 “입사 시험 때 국사를 준비하면서 ‘내 나라’ ‘내 민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수능에서 국사가 필수였다면 그런 기회를 고교 때 미리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리는 “회사 지식사랑방에 있는 역사책들을 빌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며 “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면 대학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든 입사 시험에 포함시키든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우편향이니 좌편향이니 하면서 교과서 논란이 일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기성세대의 이념논쟁이 학생들의 자아 성립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