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으로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84)는 한국 독자들이 각별히 사랑하는 외국 작가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1988년 국내에 처음 번역된 이래 70만 부 넘게 팔렸고,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쥘리에트 비노슈가 주연한 영화로도 친숙하다. 최근 민음사에서 밀란 쿤데라 전집 15권을 완간했다. 프랑스 밖에서 그의 전집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조국 체코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나이 든 세대는 그를 공산독재 정권 아래 신음하는 민족을 팽개치고 떠난 괘씸한 작가로 기억한다. 쿤데라 소설 가운데 상당수는 체코에서 읽을 수 없다. 그가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다는 사실도 비판의 대상이다.
▷체코의 젊은 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의 성취에 대해 존경심을 표시하고,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통해 또 하나의 고향을 찾아낸 점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체코 관광청의 한국지사장 미하일 프로차츠카 씨는 “쿤데라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부질없는 것이다. 쓰라린 시대를 건너온 사람들의 좌절감이 투영된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쿤데라는 풍부한 지식과 신랄한 유머로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 틈새에 갇힌 사람들의 비극과 심리, 생의 본질을 절묘하게 포착해 왔다. 이런 미덕은 작가 자신이 감내해야 했던 시대적 상황과 체험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그는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작가다.’ 시인 루이 아라공이 쿤데라를 평가한 말이다. 체코 사람들의 그를 향한 복잡한 시선은 ‘20세기의 비극적 역사를 가진 약소국 출신 대작가’라는 점에 맥이 닿아 있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뇌 없이 과연 그의 선택이 고단한 망명인지, 안전한 도피인지는 함부로 재단하기 힘들 것 같다. 지나온 역사에 대해 단순한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우리의 ‘참을 수 없는 판단의 가벼움’을 돌아보게 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