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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恨 푼 神의 한 수 ‘류·한·수’

입력 | 2013-10-03 03:00:00

60kg급 1인자 정지현 그늘에 묻혀 66kg급 올린 뒤 정지현 벽 넘어
“안한봉 감독 신발 빌려 신고 우승”




류한수가 레슬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딴 금메달을 목에 걸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아무도 류한수(25·상무)를 주목하지 않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2013 레슬링 세계선수권 경기 전날 계체량 때만 잠시 눈길을 받았다. 그레코로만형 66kg급이라고 하기에는 왜소한 체격. 그는 음료수까지 마시며 여유롭게 순서를 기다렸다. ‘뭐 이런 선수가 다 있어?’ 고된 감량을 거친 다른 선수들의 신경질적인 눈빛이 그에게 쏟아졌다.

훈련 도중 류한수의 레슬링화가 찢어지자 발 사이즈(255mm)가 같은 안한봉 레슬링 대표팀 감독(45)은 자신의 신발을 내줬다. 그가 자신의 신발을 신고 결승에 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본래 60kg급이었던 류한수가 체급을 올려 올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기 때문이다. 류한수가 지난달 23일 결승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슬람베크 알비예프(러시아)를 5-3으로 꺾자 안 감독은 제일 먼저 ‘말춤’을 추며 달려 나갔다. 류한수는 14년 만에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류한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 알비예프와 찍은 사진이 있다. 과테말라에서 열린 2007 세계주니어선수권 60kg급 시상식 장면인데 그가 1위였고 3위였던 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내가 시상대 가장 위에 올라 있다.”

그는 만년 유망주였다. 2006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세계선수권 및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같은 60kg급의 ‘절대강자’ 정지현(30·삼성생명)의 그늘에 가렸기 때문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정지현은 그에게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정)지현이 형에게 지고 복도에서 우는 어머니를 보면서 정말 속상했다”고 했다. 런던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고배를 마신 류한수는 체급을 한 단계 올렸지만 같이 체급을 올린 정지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정지현은 그에게 ‘어떻게 해서든 넘어야 할 산’이었다. 하지만 체급을 올린 게 그에겐 ‘신의 한 수’였다. “60kg급일 땐 체중 감량을 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나 자신에게 지는 느낌이 들었다. 감량을 덜 하니 달랐다. 더 빠르고 강하게 움직일 수 있게 돼 66kg급에서는 지현이 형을 두 번이나 이겼다.”

정지현이란 산을 넘고 세계선수권 정상에 오른 류한수는 욕심이 많아졌다. 29일 상무에서 제대해 소속팀 삼성생명으로 복귀하는 그는 “운동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다시 레슬링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시아경기대회 선발전을 준비하고 있다. 같은 팀인 지현이 형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류한수와 정지현은 18일부터 인천에서 열리는 제94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결승에 오를 경우 다시 한 번 맞대결을 펼친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