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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OUT]금융회장님, 스포츠 ‘생존대출’ 안될까요

입력 | 2013-10-03 03:00:00


김종석 스포츠부 차장

한국 여자 농구는 1980년대까지 국민 스포츠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이런 열기에는 청와대의 높은 관심에 따른 은행 팀들의 경쟁도 원동력이었다. 1960년대 박정희 장군배 동남아여자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당시 대통령 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대표 선수였던 박신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하기도 했다. 이 시기 은행 여자 농구팀은 7개나 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 여자 농구 대표팀 감독이던 조승연 씨는 “올림픽을 앞두고 청와대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선수들에게 일일이 코치까지 해줬다”고 말했다. 한 원로 농구인은 “당시 은행 농구단장이 꽃 보직이었다. 고위층을 자주 만날 수 있던 승진 코스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정권 교체 후 ‘윗분’들의 농구 사랑이 시들해지면서 은행에서도 농구단은 찬밥 신세가 됐다. 1990년대 외환위기를 거치며 구조조정 1순위였다. 13개였던 여자 실업팀은 은행 팀들의 해체 도미노 현상 탓에 4개까지 줄었다. 여자 농구의 국제 경쟁력도 떨어졌다. 여자 농구는 프로화 이후 거물 정치인을 연맹 총재로 영입해 그나마 활로를 찾았다.

세월이 흘렀어도 은행 스포츠는 여전히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정권의 눈치를 덜 본다고 해도 낙하산 회장들의 입맛에 따라 스포츠는 파리 목숨이라도 된 듯하다. 전임 강만수 회장 시절 그룹 스포츠단까지 만들며 공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했던 KDB금융그룹은 올해 서강대 출신인 홍기택 회장 체제로 바뀐 뒤 회사 사정을 이유로 스포츠 부문의 대폭 축소에 나섰다. 대회 기간 3만 명 가까운 관중을 동원하며 호평 받았던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코리아오픈 후원도 내년부터 중단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후원 금액도 당초 12억 원에서 8억 원으로 줄였다. 계열사 매각 결정에 따라 탁구와 골프(대우증권), 농구(KDB생명) 등도 여파가 불가피해 보인다. KB금융그룹도 회장 교체와 맞물려 전임 회장이 신경 썼던 농구, 골프의 입지가 축소됐다는 후문이다. NH농협은행의 정구와 테니스는 30년 넘는 역사를 지니며 국내외에서 눈부신 성적을 거뒀지만 회장 교체기마다 좌불안석이다.

스포츠가 사회 공헌, 국민 정서 함양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 제고, 조직 충성도 향상 등 순기능이 많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비인기 종목 육성에 드는 돈은 천문학적인 홍보 비용과 비교하면 큰 편도 아니다. 어르신의 구미에 휘둘리기보다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투자와 관심이 절실하다.

김종석 스포츠부 차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