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성 강조하지만… 정권 바뀔때마다 홍역 치르는 권력기관장
비단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임기제가 시작된 1988년 이후 임기를 다 채운 검찰총장은 전체 18명 중 6명뿐이었고 경찰청장은 2004년 이후 6명 중 1명만 임기를 마쳤다. 임기제가 ‘철칙’은 아니지만 권력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한 제도와 운영, 사람이 엇박자를 이루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권력기관장 교체 악순환
양건 전 감사원장이나 채 전 총장의 경우도 사퇴 과정에 여러 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임기 중 하차했다. 양 전 원장은 초기 새 정권 일각의 사퇴 압박을 견뎌냈지만 전임 정권의 역점 사업인 4대강 감사가 본격화되자 스스로 중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채 전 총장은 처음부터 박근혜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임명하긴 했지만 취임 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3명 중에 골라야 했기 때문에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은 마뜩잖아 했다는 게 정설이다. 혼외 자식 의혹이라는 돌발 변수로 지난달 사표를 냈다.
헌법과 법률은 권력기관들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고 청문회 때마다 야당은 이 부분을 물고 늘어지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그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윤성식 고려대 교수도, 이명박 정부 때 정동기 전 대통령민정수석도 감사원장에 내정됐다가 ‘코드 인사’ 논란에 따른 감사원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낙마했다.
○ 역대 정권도 권력기관도 모두 책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기관장이 교체되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기관을 컨트롤하려는 정권의 유혹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진영 간 극한 대결로 치러지는 우리나라 정치 특성이 권력기관장 교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좌파와 우파 진영 간의 가치 차이가 워낙 크고 권력기관장도 이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정당 시스템이 잘 정착된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후보 중심으로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정권이 계승되더라도 국정철학이 달라 권력기관장 교체 요인이 생긴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 자체가 편향된 인물인데 임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편향된 인물을 그대로 써야 되느냐는 문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항변했다.
권력기관이 정치화돼 스스로 권력의 정치 개입을 자초한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은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사건을 터뜨려 대선 정국의 키를 쥐는 경우가 많았다. 감사원도 정권 교체 후 치러진 4대강 감사 결과가 전임 정권 때와 달라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도 대선 때마다 선거 개입 의혹을 받거나 전현직 일부 직원들이 각 캠프에 정보를 제공하며 줄을 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 “권력기관 사유화 유혹 끊어야”
전문가들은 권력기관장의 임기제가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비정상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뚜렷한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 정권이 권력기관을 사유화하려는 악습을 끊으면서 자연스럽게 임기제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우 중립성이 상당히 잘 보장되고 있고 정권이 바뀐다고 위원장이 바뀌지도 않는다”며 “정권이 당장 모든 권력기관장의 임기를 다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감사원장이나 국정원장처럼 업무상 정권과 전혀 무관한 곳부터 임기를 보장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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