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도보다 만족도, 승진보다 보람… 연봉 대신 새로운 도전 선택”IT 벤처기업 취업-창업 늘어… ‘스타트업’ 채용 전문 사이트도 등장
미국 예일대 정치학과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던 한상협 씨(39)는 2010년 7월 모바일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업체 창업을 준비하던 친구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평소 중고 거래를 자주 이용하고 물건을 함께 쓰는 공유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교수’의 꿈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한 달 동안 고민한 끝에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씨는 “공부를 계속해 저명한 학자가 되더라도 조언자의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내 손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한 씨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마다하고 스타트업에 취업하는 구직자들이 늘고 있다. 각자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연봉, 사회적인 인지도, 직업의 안정성보다 개인적인 만족도, 비전, 기업문화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비전을 갖고 있다는 뜻에서 ‘UV(Unique Vision·유니크 비전)족’으로 불린다.
UV족은 사회적 시선이나 남들의 평가보다 개인적인 만족을 더 중시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대 사범대를 나온 박노은 씨(26)는 2011년 6월 데이팅 앱 서비스 ‘이음’을 운영하는 ‘이음소시어스’에 입사했다. 그는 교생 실습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행정 업무에 시달릴 때가 더 많은 것을 보고 교사의 꿈을 접었다. 박 씨는 “‘소개팅과 연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찾는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끔씩 연봉 1000만 원을 더 받는 대학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즐기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창업 전 단계로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스타트업에선 여러 분야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대기업보다 배울 수 있는 게 많다는 판단에서다. 이동진 씨(25)는 지난달 ‘배달의 민족’ 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전략기획실에 입사했다. 그는 성균관대 경영학과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지만 창업을 꿈꿨다. 이 씨는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해서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입사 이유를 밝혔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것도 UV족의 등장에 영향을 줬다. 카셰어링 업체 ‘쏘카’에 다니는 이련경 씨(23)는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가도 어차피 오래 다니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그럴 바에는 재밌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첫 직장으로 택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지원하는 구직자가 늘면서 최근에는 스타트업 채용 정보를 한데 모아 제공하는 사이트까지 생겼다. 로켓펀치(rocketpun.ch)와 벤스터(www.venster.co.kr)가 대표적이다. 2일 현재 이곳에 올라온 구인 정보는 각각 528건, 149건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