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산림과학원 “20%가량 고사”“재생능력 믿고 인위적 복원 자제를” “멸종가능성 높아 복원 시급” 팽팽관계기관들 “종자 수집-보존원 조성”
한라산 정상 부근 북쪽 능선에 말라죽은 구상나무가 수두룩하다. 기후변화 등이 요인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대책마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피라미드 형태로 곧게 펴진 늘 푸른 모습과 죽어서도 기묘한 형상을 간직해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구상나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한라산 방아오름, 진달래밭, 영실 등 3곳을 표본 조사한 결과 20%가량이 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구상나무는 한라산에만 숲을 형성하고 있어 학술적, 경관적으로 가치가 높다”며 “고사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최근 강한 폭풍이나 태풍, 집중호우, 폭염 등 극한 기후와 기후온난화로 죽는 경우가 많이 관찰됐다”고 말했다.
구상나무 고사가 한라산국립공원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복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국제보호지역연구과장은 “구상나무가 위기에 직면해 보존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누가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며 “구상나무는 일정 부분 스스로 재생하는 치유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인위적인 복원을 서둘지 말고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상나무 현지 복원에는 이견이 있지만 관련 기관의 공조체제 구축에 대해서는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라산은 문화재보호구역, 천연기념물,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 및 생물권보전지역 등으로 여러 기관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비롯해 산림청, 문화재청 등은 최근 회의를 열고 구상나무 고사 현황과 보전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종자 수집과 보존원 조성을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하는 의견을 모았다.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분포한 지역은 7.9km² 규모로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 52곳에 퍼져 있다. 대단위로 군락을 이룬 것은 세계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