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형 펀드로… 글로벌 전환사채 펀드로… 강남 아파트로… 자산가들의 투자 발걸음이 눈에 띄게 바빠지고 있다
상반기(1∼6월) 내내 조용했던 국내 자산가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기 예·적금에서 빼낸 돈을 머니마켓펀드(MMF)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같은 단기 현금성 상품에 넣어놓고 관망하던 이들 가운데 일부가 ‘위험 자산’인 주식 투자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김태영 삼성증권 대치지점장은 “부자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게 주식인데 최근 거액 고객 몇 분이 소재, 화학, 철강, 조선 등 경기 민감주를 중심으로 수억 원의 주식을 매집했다”며 “투자 욕구를 억눌러왔던 불안감이 조금씩 해소 조짐을 보이면서 부자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철 하나은행 법조타운 PB센터장은 “본격적인 출구전략 전에 신흥국 투자 비중을 줄이고 선진국 주식을 포트폴리오에 넣으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단기상품에 들어있던 돈을 빼서 미국이나 유럽의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 말까지를 주식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자산가들도 많아졌다.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신흥국에 투자하는 하이일드 채권에 6억 원을 묻어뒀던 이모 씨는 9월 중순 이를 전부 환매해 코스피2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에 5억 원을 투자했다. 이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신흥국 채권의 수익률이 괜찮았는데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서 한국 주식으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출구전략 시행이 분명해지면서 시장 전망에 대한 불안감이 점차 걷히자 자산가들 사이에서 ‘더이상 나빠지지는 않겠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홈런보다는 번트”
MMF, CMA, MMT 같은 단기 상품에 10억 원 이상 넣어놨던 김모 씨는 최근 글로벌 전환사채에 5억 원을 투자했다.
요즘 자산가들은 만기가 긴 상품 대신 짧은 상품 위주로, 수익률도 크게 욕심 내지 않고 ‘시중금리+α’ 정도의 상품에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만기가 6개월이 안되는 짧은 상품을 여러 개 갖고 있으면서 만기가 돌아오면 새로운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다. 오래 기다려서 ‘홈런’을 치는 장기 투자가 아닌, 방망이를 짧게 잡되 안정적으로 ‘번트’를 낼 수 있는 단기 투자를 선호한다.
이러한 투자 트렌드에 맞춰 자산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품이 글로벌 전환사채 펀드와 롱쇼트 펀드이다. 이 중 일부는 2%대의 저금리 상황에서 연 10% 이상의 수익률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아직 소수이지만 아파트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나타났다. 투자가 아닌 자식에게 줄 목적으로 아파트 매수에 나선 것.
자산가인 박모 씨는 최근 PB센터에 강남구의 30평형대 아파트를 골라 달라고 주문했다. 30대 자녀를 둔 박 씨는 현재 아파트 가격을 바닥으로 보고 그동안 전세를 살던 자녀에게 집을 사주려고 한다.
김태영 지점장은 “전세금이 워낙 높아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아파트 거래도 늘고 일부 분양이 잘됐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이제 부동산 구매에 나서려는 자산가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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