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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철]한국 건설의 중동 특수, 의료가 잇게 하자

입력 | 2013-10-04 03:00:00


이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인에게 주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지난달 보건복지부 장관, 다른 대학병원장들과 함께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지금 우리에게 사우디는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봤다.

올해는 우리 기업들이 중동 특수 붐을 타고 중동에 진출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1973년 12월 삼환건설의 사우디 알룰라∼카이바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한 중동 건설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동안 한국이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무려 3020억 달러에 이른다.

중동 건설은 지금도 비교적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사우디’라는 말로 상징되던 중동은 점점 잊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우리 정부 및 의료계 관계자들의 사우디 방문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번에 한국과 사우디 정부가 맺은 의료인 연수 협정에 따라 내년 3월부터 사우디 의사 3000여 명이 한국의 5개 대학병원에 와서 연수를 받게 된다. 의사 1인당 매달 3000달러(약 320만 원)의 비용을 내기 때문에 기본 연수기간 2년을 고려하면 총 2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는 그동안 자국 의사들을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3개국에만 연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을 네 번째 연수 대상국에 포함시켰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 방문단이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의 킹 파이살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장은 “현재 우리 병원 의사가 세브란스병원에서 2년 예정으로 로봇 수술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사우디 의사 4명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연수 중이다. 사우디가 한국의 병원 정보시스템(HIS)을 자국의 3000개 보건소와 80여 공공 병원에 구축하기로 한 것도 사우디가 한국 의료의 수준은 물론이고 의료 시스템과 제도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사우디에는 의료 사업 붐이 일고 있다. 2005년 즉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의료 분야에 집중 투자해 지난해에만 29개 병원을 새로 완공했고, 102개 병원을 건설 중이다. 막강한 오일 달러의 힘으로 부국이 된 사우디는 의료를 육성해 국민의 건강 증진은 물론이고 차세대 산업으로 키워 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때에 한국이 사우디와 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함으로써 새로운 중동 의료 특수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한국 병원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이 예정대로 될 경우 사우디에 수출하는 의료 IT 사업 규모는 약 1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는 아직도 ‘복지’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의 산업적 경쟁력은 외국에서 먼저 주목하고 있다. 의료가 중동의 의료 붐을 타고 외화 획득에 나설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정부 당국자와 병원 대표들의 사우디 방문은 의료 분야 해외 진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은 사우디 의사들에 대한 연수 경험을 토대로 내년부터 좀 더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정부에서도 공산품의 수출과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했던 것처럼 의료-제약 분야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이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