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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어려운 것” 깐깐한 시험… 합격해도 2년간 임시면허

입력 | 2013-10-04 03:00:00

[시동 꺼! 반칙운전/6부]<6>독일, 엄격한 운전면허 제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 뮌헨 중심가의 슈베걸 파르슐레 운전면허학원 강의실에서 강사 슈베걸 씨가 수강생들에게 ‘차량 전조등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슈베걸 씨는 “운전이 어렵다는 것을 알리는 게 강의의 목적”이라며 학생들에게 공격적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뮌헨=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무려 20년 동안(1991∼2010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떨어진 나라. 지난해에는 역대 최저 교통사고 사망자 수(3600명)를 기록한 나라.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과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 BMW, 폴크스바겐으로 잘 알려진 독일이 그렇다. 체계적인 교통시스템과 명품 자동차의 안전성 덕분에 독일은 ‘운전자의 천국’으로 불리지만 사실 엄격한 운전면허 제도와 교통안전교육으로 더 유명하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독일의 까다로운 면허 취득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교통연구원 김영호 박사와 함께 4월 말 독일을 방문했다.

○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낮추는 게 목적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 뮌헨 중심가의 슈베걸 파르슐레 운전면허학원 강의실. 수강생 14명은 계속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사 슈베걸 씨(63)가 “자동차 상향등은 언제 켜야 할까요. 맞은편 운전자에게 화가 나 운전을 방해하고 싶을 때? 운전자 마음대로?”라며 공격적으로 질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올 때” “위급한 상황에서”라는 대답들이 나왔지만 슈베걸 씨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상향등은 외각도로처럼 조명이 없는 곳에서 더 먼 곳의 시야 확보가 필요할 때에 한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날은 운전면허 기초이론교육 11번째 시간. ‘차량 전조등 사용법’을 주제로 1시간 20분 동안 강의가 이뤄졌다. 독일은 기초이론교육을 14시간 이상 받아야 도로주행을 시작할 수 있다. 슈베걸 씨는 전조등의 종류와 사용법, 기계적 작동 원리까지 세세하게 가르쳤다. 낮과 밤, 운전자와 보행자 등 각각의 입장과 다양한 상황에서 찍은 슬라이드 필름 수십 장을 보여주며 교통법규뿐 아니라 운전자의 판단과 행동 요령까지 질문했다. 한국에서 면허를 딴 지 1년이 채 안 된 기자는 절반 이상이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기자가 “수업 내용이 어렵다. 이렇게 자세히 배울 필요가 있느냐?”라고 묻자 슈베걸 씨는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게 1차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운전이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것. 그는 “운전면허학원은 빗길·눈길 운전, 안개가 끼었을 때, 커브를 돌 때 등 도로에서 만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상황과 대처 요령을 가르치는 자동차 사용설명서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운전대를 잡기 시작하는 처음이 중요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따는 데 드는 비용은 1295유로 남짓. 약 187만 원으로 비용도 비싸지만 면허 취득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14시간 이상 기초이론교육을 들어야만 필기시험을 볼 수 있고 각기 배점이 다른 30개 문제(108점 만점)를 풀어 99점 이하를 받으면 불합격이다. 도로주행수업도 일반 도로 외에 심야운전 시외도로 및 고속도로 운전 등 각기 다른 상황에서 12시간 이상 수강해야 한다. 도로주행 과정을 듣는 아나스타샤 씨(19·여)는 최근 2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쉬지 않고 달리는 ‘스트레스 상황의 도로주행’을 했다. 그녀는 “필기시험을 겨우 통과했는데 주행이 훨씬 어렵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운전이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왜 이렇게 운전면허 취득을 어렵게 만들었을까. 취재팀은 다음 날 회원이 1800여만 명인 독일의 자동차 운전자 클럽 아데아체(ADAC) 본사를 찾았다. 아데아체는 유럽 최대 자동차 운전자 연맹으로 운전자 교육 및 구조활동, 연구를 진행하는 조직이다.

아데아체는 ‘젊은 운전자 교육’을 교통사고 감소와 도로 안전성 제고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독일 인구 8000여만 명 중 18∼24세는 640여만 명(8.3%)에 불과하지만 교통사망사고의 30%가 이 연령대 운전자들과 관련돼 있다.

아데아체 도로교통연구 담당 프랑크 박사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규수업으로 ‘올바른 안전띠 착용법’ ‘도로 위 수신호’ 등 기본적 안전교육을 받지만 운전대를 잡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초보 운전자일수록 자랑 심리 때문에 과속, 신호위반, 차선위반을 일삼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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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986년부터 관찰면허제도(Probationary driving licence)를 운영 중이다. 운전면허시험에 최종 합격해도 임시면허증을 발급하고 2년 동안 임시면허기간을 두는 것. 만약 임시면허증 소지자가 속도위반 신호위반 등으로 적발되면 30만 원 정도의 높은 벌금을 내야 한다. 또 2∼4주간 매일 4시간가량 실시되는 교육에 참여해야 하며 또다시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임시운전면허기간이 4년으로 연장된다. 김영호 박사는 “이처럼 엄격한 운전면허제도와 교육 때문에 독일 운전자들이 유럽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운전자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뮌헨=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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