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디자인과 자퇴생, 세상에 없던 치킨 맛을 디자인하다
보기 좋은 치킨이 맛도 좋다. 이용훈 사장이 양손에 든 음식이 ‘치킨 인 더 키친’의 양대 메뉴다. 왼쪽이 양파튀김과 감자튀김이 곁들어진 프라이드치킨 ‘범프 오브 치킨’, 오른쪽은 맵고 빨간 고추 양념이 군침을 돌게 하는 ‘레드핫 칠리페퍼스’다. 둘을 반반 섞은 ‘하프 앤 하프’도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최근 착한식당 37호점으로 선정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치킨 인 더 키친’. 이곳은 착한식당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젊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홍익대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다. 허브향이 느껴지는 프라이드치킨, 달콤하면서도 은은하게 매운맛이 감도는 양념치킨은 여느 프랜차이즈 회사의 치킨과는 다른 맛이다.
“제 20대의 후반기를 투자한 치킨 요리법이거든요. 그것만큼은 자부심이 있어요.”
범프 오브 치킨과 블랙사바스의 궁합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이 씨는 갑작스레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대학 2학년을 마친 뒤 자퇴하고 돈벌이를 해 왔다. 치킨집은 20대 중반에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사업이 실패하면서 제가 가족을 책임지게 됐어요. 돈이 필요한데 디자인 아르바이트만으로는 힘들어서 음식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떡볶이부터 족발, 오징어보쌈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생각했는데 그래도 치킨만 한 게 없더라고요. 다들 좋아하니까.”
이 씨는 창업을 결심한 이후 평일에는 전공 관련 아르바이트, 주말에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만의 가게’를 준비했다. 틈틈이 전국의 유명한 치킨집을 찾아다녔고 밤에는 단칸방에서 가정용 튀김기를 이용해 닭을 튀겼다. 생닭에 밑간을 하는 염지 작업부터 소스 개발까지 특별한 맛을 만들기 위해 치킨 요리 일지를 썼다.
그렇게 3년간의 준비 끝에 가족과 친지에게 돈을 빌려 2011년 말 가게를 열었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돼 유명해지면서 최근 3층짜리 건물로 이전했지만, 시작은 주택의 창고를 개조한 작은 공간이었다.
깨끗하고 건강한 치킨은 ‘치킨 인 더 키친’이 내세운 차별화 전략이다. 이틀에 한 번 신선한 국산 생닭을 공급받아 튀긴다. 매일 정해 놓은 분량만 튀기고, 이틀 이상 지난 닭은 폐기한다. 매일 새 기름을 사용하고, 요리를 위한 재료도 날마다 장에 들러 조금씩 구입한다. 염지를 할 때나 소스를 만들 때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치킨 파우더도 직접 만든다. 치킨과 함께 제공되는 무도 이 씨가 담근 것이다. 이 씨는 “보통 음식 장사는 순 재료비 지출 비중을 전체 수입의 30% 내외로 잡는다. 하지만 ‘치킨 인 더 키친’은 재료비가 4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치킨이 공장에서 조립하듯 만드는 거라면 저희는 직접 요리를 한다는 게 다르다고 봐요. 제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 듯 정성을 들이면 손님들도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디자인 전공자이자 한때 인디밴드의 멤버였다는 이 씨는 식당 분위기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의 취향을 단번에 엿볼 수 있는 것이 ‘치킨 인 더 키친’의 메뉴판이다. 메뉴판에는 음식 이름 대신 각종 록밴드 이름이 즐비하다. 일본 록밴드 ‘범프 오브 치킨’이 프라이드치킨, 미국 록밴드 ‘레드핫 칠리페퍼스’는 양념치킨을 의미한다. ‘그린데이’는 샐러드, ‘오아시스’는 생맥주, ‘블랙 사바스’는 흑맥주인 식이다. 치킨집 벽에는 레드 제플린, 밥 딜런 등 유명 뮤지션의 공연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다. 이 씨는 “최근 중장년층 손님이 늘어 비교적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편인데 예전에는 록 음악만 틀었다”고 귀띔했다.
“‘먹거리 X파일’이 방영된 날 밤부터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테이블 7개짜리 조그만 가게 앞에 100m 가까이 줄이 섰고, 손님들이 서너 시간씩 기다리는 사태가 발생했죠. 몇 달 전에는 비 오는 날에 튀김기가 고장 나서 기다리던 분들이 모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정말 제가 도망가고 싶었어요.”
‘사랑과 평화의 맛’을 찾느라 잃어버린 것
‘착한식당’ 덕분에 얻은 것이 많지만 잃은 것도 있다. 너무 바빠진 남자친구에게 불만이 쌓인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했다. 단골손님이 등을 돌리고, ‘기다리다 지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손님까지 생겼다. 그래서 3개월 전 급히 지금의 건물로 가게 확장을 결정했다. 방송 전 평일 기준으로 30마리 정도 팔리던 닭이 이제는 150마리로 늘었다. 3명뿐이던 직원이 정규직 8명을 포함해 20명이 넘는다.
“가게가 커지니까 돈을 많이 벌었나 보다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안타깝게도 아직은 아니에요. 급히 가게를 옮기는 바람에 빚이 더 많죠.”
요 몇 달 사이 사람이 늘고, 혼자 도맡아 하던 일을 여러 직원과 분업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정비하긴 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무엇보다 영업상 비밀인 염지는 아직까지 그가 손을 놓지 않는 분야다. 자정 무렵 가게 문을 닫으면 이 씨는 홀로 150마리 생닭에 기초적인 간을 하고 재워 둔다. 그는 신선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이 작업을 매일 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과 회식하다가 혼자 중간에 돌아와서 염지 작업을 할 때가 가장 슬프다”고 했다.
‘치킨 인 더 키친’은 사장인 이 씨를 포함해 전 직원이 20대다. 직원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매니저는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하우스음악 디제이, 주방장은 바리스타 출신이다. 디자인 전공자, 전직 은행원도 있다.
이 씨는 이들과 함께 지금의 치킨집을 좀 더 문화적인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바람이 있다. 현재는 밀려오는 손님을 받기에 급급하지만, 나중에는 직원들이 가진 장점을 살려 전시나 DJ 파티 등을 하는 데도 건물을 사용할 계획이다.
“처음에 홍익대 주변에서 장사를 하려 했던 게 이 주변이 문화적으로 개성 있는 몇 안 되는 상권이기 때문이에요. 이곳에서는 가게가 구석에 있어도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와요. 물론 그런 가게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를 담고 있어야 하죠.”
이 씨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그의 명함에는 ‘TASTE OF LOVE AND PEAC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가 그의 모토라고 한다. “만드는 과정이 즐겁고, 건강하고 안전한 음식에서는 ‘사랑과 평화의 맛’이 나온다”는 그에게 꿈을 물었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되면서 제 꿈이나 계획도 조금 변했어요. 예전에는 그냥 혼자 장사를 하는 거였다면 이제는 좋은 사업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직원이 늘면서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많아졌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사랑과 평화의 맛’을 만들겠다는 정신은 잃지 않으면서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