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그제 “우리는(6자회담 참가국) 북한과 불가침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비록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정통성 있는 협상에 나선다면’이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불가침협정 체결 의지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은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불가침협정은 체제 보장에 대한 더 강한 의지 표명이다. 케리는 “우리는 북한의 정권교체를 시도하지도 않는다”는 말도 했다.
미국과 북한은 최근 베를린과 런던에서 연쇄적으로 트랙2(민관) 접촉을 갖고 6자회담 재개와 양국 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에서는 스티븐 보즈워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비롯한 전직 관리들이 참석했고 북한에서는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용호 외무성 부상 등이 나왔다. 케리의 발언엔 북-미 대화의 성과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최대의 안보불안 요인이다. 중국도 미국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는 게 북한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한미의 맞춤형 억제전략도 북한의 핵무장이 강요한 것이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케리의 발언을 활용해 북한을 실효성 있는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중국은 줄곧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북-미 관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오지 않았던가.
정부는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대북(對北) 유화 발언의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북-미 관계가 너무 앞서 나간다면 한국의 대북 억지력은 줄어들 수도 있다. 한미 공조가 잘돼야 대북정책의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북한의 반응을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