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태, 이루다, 김명규, 한선천.(왼쪽부터)
춤은 더 이상 노래의 '서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온전히 춤을 보려고 TV 앞에 모였다. 난해하게만 보였던 현대무용과 발레의 매력에 빠지고, 스트리트 댄스의 세부 장르를 구분하는 눈도 갖게 됐다.
5일 종영한 Mnet의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은 '슈퍼스타K'를 히트시킨 김용범 PD의 작품이다. 7월 방영을 시작해 현대무용과 발레부터 K팝 댄스, 비보잉, 댄스스포츠까지 다양한 분야의 정상급 춤꾼이 한자리에 모여 화제가 됐다.
예선과 본선을 거쳐 이날 결선 무대에 오른 14명 중 현대무용수 이선태(25)와 한선천(24), 발레무용수 이루다(27)와 김명규(25)는 특히 빼어난 기량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각각 레드윙스와 블루아이 팀으로 나눠 펼쳐진 총 6회의 경연에서 가장 높은 심사위원 점수를 얻었고, 시청자들로부터는 "국보급 춤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요즘 유튜브에서 네 사람의 동아콩쿠르 경연 영상이 조회 수 수만 건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이루다=무용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전부터 그 영상의 파급력이 엄청났다. 예고에서는 동아콩쿠르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 수업이 있을 정도다. 수상자들의 무용스타일이 그 해의 기준이 된다.
▽김명규=무용학도에겐 축제 같은 행사다. 무용 공연장에서 환호성 지르는 건 동아콩쿠르가 유일할거다. 또 상 타면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상 타고 나서 모교(전주예고) 교장선생님이 학교에 플래카드 걸어놨다고 전화 주셨다.(웃음)
-언제부터 춤을 배웠나?
▽이선태=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까진 비보이를 했다. 현대무용을 배운 건 충남예고 진학 후였다. 발레 기본자세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요즘 현대무용수 중에는 나처럼 비보이 출신이 적지 않다.
▽이루다=4살 때부터 발레를 했다. 어머니(안무가 이정희) 덕에 여동생(현대무용수 이루마)도 모두 무용을 한다. 말보다 발레를 먼저 배웠을 정도다.
▽김명규=어릴 땐 축구를 했다. 전주예고에 진학한 후엔 발레복이 너무 야해서(웃음) 처음엔 댄스스포츠를 했는데 고등학교 2학 년 때 전공을 바꿨다. 그것도 사실 동아콩쿠르 덕이다. 단체관람 갔다가 당시 발레리노 김현웅(현 워싱턴발레단 수석 무용수) 형을 보고 충격을 받고 결심한 거니까.
-발레나 현대무용 모두 '고급예술'로 분류된다. 방송에 출연한 계기가 궁금하다.
▽한선태=제작진에게서 먼저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갈등이 많았다. 각자의 작품에 점수를 매긴다는 것도 꺼려졌다. 다만 무용을 알리고 싶은 바람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공연을 하면 늘 가족과 친구에게 티켓을 팔아야 했는데 더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 와주었으면 했다.
▽김명규=부상으로 발레를 1년 반 동안 쉬면서 슬럼프를 심하게 겪었다. 대리운전, 발레파킹,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는데 그 때 발레를 그만두려 했다. 그러다 방송 공고를 봤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지원했다. 발레도 충분히 멋지고 재미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한선천=한창 슬럼프를 겪을 때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미래가 불투명해 무용을 그만두려고 헤어와 메이크업 학원도 다녔다. 미국의 '유캔댄스'라는 프로를 보면서 왜 한국엔 춤 서바이벌이 없을까 아쉬워했었다.
▽김명규=발레는 척추와 목이 일자가 되어야 하다보니 평소에도 고개를 떨군 적이 없다. 경연에서 스트리트 댄스를 할 때 몸을 숙이고 춤을 추다 담이 걸렸다.
▽한선천=현대무용은 발레보다는 동작이 자유로운 편인데도 댄스스포츠가 어려웠다. 골반과 팔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게 쉽지 않더라.
-방송 출연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뭔가.
▽한선천=얼마 전 출연자 모두 팬 사인회를 가졌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인파가 모였는데 눈물 날 뻔 했다. 암 투병 중이라는 분이 내 춤을 보고 힘이 된다고 했을 때, 한 학생이 방송을 보고 자신도 무용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댄서로서 보람을 느꼈다.
▽이루다=발레를 하면서 내 외모나 체격이 마르고 가냘픈 발레리나의 틀에 안 맞는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 내 장점을 어떻게 살려야할지, 내가 어떤 춤을 춰야 할지에 대해서 깨닫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김명규=요즘 "공연장에 꼭 가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기쁘다. 빨리 발레 무대로 복귀하고 싶다.
▽이루다=최근 무용을 위한 뮤직비디오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유튜브로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검색하듯 쉽게 무용을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영화 예고편처럼 내 영상 콘텐츠를 보고 공연장을 찾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한선천=다양한 분야의 춤을 접하면서 배운 게 많다. 앞으로 해외 경연에 나가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나만의 춤을 만들고 싶다.
▽이선태=이번 방송을 계기로 한동안은 대중성을 살리는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 무용계에서 '지나치게 대중영합적인 춤을 춘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대중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줬다면 우리도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댄싱9'이 그 첫 단추였고, 그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아서 행복하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