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변의 배신]■ 시리즈를 마치며
《 8월 중순 취재팀이 ‘탈북자 납치북송 사건’ 피해자 장○○ 씨(33)를 처음 만났던 순간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장 씨는 2004년 겨울, 탈북자 출신 한국인 채○○ 씨(48)가 “한국에 보내주겠다”고 한 것에 속아 가족과 함께 북송된 비운의 여인이다. 북송 후 남편은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생후 8개월이었던 아들은 어딘가로 입양됐다. 》
본보 9월 30일∼10월 4일자 논픽션 드라마 ‘두만강변의 배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장 씨는 막 머리를 감은 듯 머릿결이 젖어 있었고 분홍색 블라우스 차림으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7년간 북한 교화소 생활을 할 때 대못을 삼켜 자살하려 한 적이 있고, 출소 후 다시 탈북하다 붙잡혔을 땐 칼로 배를 찌르기까지 했던 ‘독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천생 여자’에 가까웠다.
장 씨는 북송 후 참혹했던 7년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구수한 북한 사투리를 썼고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를 자주 지었다. 그녀를 이런 비극으로 내몬 채 씨는 교도소에서 죗값(1심 7년 선고)을 치르겠지만 장 씨의 잃어버린 가족과 꿈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채 씨의 가족 역시 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채 씨 아내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북한에서부터 앓아왔던 간염과 폐병, 허리디스크가 더욱 악화됐다.
대학 3학년인 딸은 채 씨가 감옥에 갇히면서 엄마와 남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 학교 공부를 하며 호프집 서빙과 편의점 알바, 육아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채 씨의 딸은 올해 9월 장 씨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하러 가면서 마음이 무거운 중에도 생전 처음 타보는 기차에 대한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도 침울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보며 ‘기차를 또 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채 씨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이나, 채 씨가 자신의 가족을 사지(死地)에서 구해내기 위해 북한에 넘겨버린 장 씨의 가족이나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채 씨의 범행은 체제에 의해 강요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린 자식들을 위험에서 구하는 방법이 다른 선량한 가족을 파탄시키는 것뿐이라면 이 야만적 선택을 피해갈 ‘아버지’는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가족애’라는 인간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려 한 사람의 인간성을 파멸시키는 것은 북한 체제의 가장 비열한 단면이다.
올해 9월 교도소에서 만난 채 씨는 기자에게 “이제와 돌이켜보면 내가 무얼 위해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채 씨에게 “네 가족을 보살펴 줄 테니 장 씨 가족을 넘기라”고 지령했던 함경북도 보위부 반탐처장 윤창주 대좌(한국에선 대령급) 역시 2011년 간첩으로 몰려 처형됐고, 그의 가족들도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 장 씨와 그녀의 가족뿐 아니라 채 씨, 심지어는 윤창주까지 북한 정권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신광영·손효주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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