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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정치보복은 있다

입력 | 2013-10-07 03:00:00

4년 전 대통령형님 측근 공천, 친박에 대한 정치보복 민심이 대신 심판해줬다
이번엔 대통령의 측근 공천, ‘원칙과 신뢰’ 브랜드 빛을 잃고…
정치보복보다 엄한 국민보복… 화성은 어느 편을 들어줄 것인가




김순덕 논설위원

2009년 4·29 재·보궐선거. 경북 경주 재·보선에 출마한 무소속 친박(親朴) 정수성 씨가 “이상득(SD) 의원 측으로부터 사퇴 종용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MB) 대통령의 형님인 SD가 아들처럼 여긴다는 정종복 전 의원을 공천해놓고 있었다.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로 불리던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 때 ‘친박 학살’에 참여한 정종복을 2008년과 2009년 연거푸 같은 지역에 내보내는 건 집요한 정치보복으로 비쳤을 터다. 당연히 SD 측에선 개입을 부인했다. 만난 적은 있지만 사퇴 종용은 없었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총출동시켜 실세의 측근을 밀었다.

그런데 정종복은 낙선했다.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불리던 SD는 6월 3일 “앞으로 당무와 정무, 정치현안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2선 후퇴를 선언해야 했다. 재·보선 참패의 근본 원인은 SD에게 있다며 당 쇄신론이 거세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30일 보궐선거를 치르는 경기 화성은 4년 전 경주와 묘하게 겹쳐진다. 새누리당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고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공천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당연히 청와대는 개입을 부인했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전혀 들은 바 없다고 관계자가 밝혔다고 해 달라”고 했다.

서청원이 친박연대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정치보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작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변호를 맡은 사실이 알려지자 “서 전 대표로선 억울함을 호소할 만한 사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문재인의 자기 보호적 주장이다. 지금 민주당에선 “대통령과의 의리를 앞세운 올드 친박의 귀환” “돌아온 차떼기당”이라는 비난이 줄을 잇는다. 여당에서도 초·재선 의원 4명이 공천 확정 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공천 때마다 쏟아지는 “정치보복” 아우성을 없애자고 투명 공천 원칙을 정치쇄신책으로 내놨는데 후폭풍이 두렵지 않으냐는 것이다.

역사는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다. 4년 전 우리는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지나치면 후폭풍을 맞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권력 핵심이 국민을 속이거나 대국민 약속을 뒤집으면 더 큰 파국이 닥친다는 사실도 체험하고 있다. 만일 SD가 약속대로 정치를 멀리했다면, 그리고 MB가 여의도정치를 가까이했다면 정권 말기 추한 모습은 없었을지 누가 아는가.

청와대가 초선 의원들만큼도 학습효과를 얻지 못한 것은 기이한 일이다. 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애국심과 선거 승리가 모든 잡음을 덮으리라는 자신감, 아니면 국민 건망증에 대한 확신이나 권력에 취한 오만 때문인 듯하다.

공천이나 권력을 둘러싼 정치보복만 무서운 게 아니다. 그들만의 정치보복보다 엄중한 것이 민심의 보복이다. 이번 공천은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불러오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정치인들 사이에선 친화력 있는 서청원이 두루 인기지만 보통사람한테는 구시대 인물로 보인다. 그가 새누리당에 복귀한 4월 그의 아들이 채용공고 과정 없이 국무총리실 4급 별정직 비서직에 뽑힌 건, 아무리 국무총리실에서 “적법하게 처리됐다”고 해도 취업준비생들을 질투심에 불타게 만든다. 작년 말엔 대기업 며느리인 그의 딸이 외국인학교 부정입학에 연루된 학부모로 불구속 기소돼 엄마들의 속을 뒤집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차출과 상관없이 그가 화성 주민들의 심판을 받는다면 대통령의 리더십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서청원이 당선돼 출마의 변대로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고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도록 돕는 일을 하겠다” 해도 나는 두렵다. 공천 확정 전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는 “내가 당 대표나 사무총장을 할 때는 딱 보고 경쟁력 있고 괜찮으면 그냥 (공천) 주는 시스템이었다”고 했다. 당권을 쥔 측이 딱 보고 정하는 공천으로, 대통령 뜻 받들기를 정부의 성공으로 아는 시대로 되돌아갈까 걱정이다. 선거비용이면 불법 정치자금 수수도 영웅적 행위가 되는 부패 공화국으로 가는 건 더 끔찍하다.

정치보복이 아름다울 순 없다. 그러나 과거 비리가 영영 묻히는 것보다는 낫다. 진짜 선진국이 되기 전까진 훗날 당하지 않도록 지금 한 치의 빌미도 남기지 않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고, 원칙과 신뢰라는 대통령 브랜드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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