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정율성은 중국군의 공식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을 지었다. 서정가요인 옌안쑹(延安頌)은 요즘 젊은이들도 부른다. 14억 중국인이 이 정도로 추앙한다면 우리가 그를 들여다볼 근거는 충분한 셈이다. 비록 중국 공산당 팔로군 소속이었더라도 말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미국에 앞서 특사를 보낸 곳이 중국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그가 북한의 공식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도 지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6·25전쟁에 중공군 창작팀으로 참전했다. 두 나라의 군가를 작곡한 진귀한 기록을 세워 놓고도 모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건 이 같은 전력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 진영은 옳았을까. 다큐를 제작한 박건 PD는 한 매체에 보낸 글에서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측을 북한 내 체제 옹위파와 등치시키며 “내가 수호하고 싶은 체제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교묘히 이용해 잘 먹고 잘사는 그런 체제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이런 그가 정율성의 북한 행적을 묘사한 건 전체 프로그램에서 2분 분량에 불과했다.
대중은 역사를 생산함과 동시에 소비한다. 정율성이라는 역사적 상품을 우리에게 더 잘 공급해 준 측은 누구인가. 다들 생산 공정의 한쪽만 뭉텅 잘라서 내놓은 뒤 강매하고 있진 않은가. 어디 정율성뿐이겠는가.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싸움도 이와 진배없어 보인다. 교육 소비자들은 “이것도 보고 저것도 좀 보자”는데 공급자들은 서로의 상품을 내놓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의 주적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총통마저 재평가하고 있다. 특히 항일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무서운 구심력이다. 반면 우리는 생각이 다르면 역사도 네 편 내 편으로 나눠야 한다. 친일파와 빨갱이는 그 양극단의 레토릭이다. 일단 너의 역사가 되면 공동의 유산으로 껴안기보다는 기억에서 삭제해야 한다. 임시정부에서 좌우익 논쟁을 했던 중국에서만 해도 우리가 모른 채 사장돼 가는 수많은 정율성이 있다. 그런 정율성들을 논의하고 평가한 다음 우리 역사로 만들어 기억해야 한다. 건국과 개발연대 세력도 흠은 흠대로, 공은 공대로 수용해야 한다. 역사를 뚝 잘라 허리부터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말을 하면 역사의식이 없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방을 전면 부정하고 세척하는 게 각이 잘 선 역사의식이라면 그런 의식은 사양하고 싶다. 그러다간 정율성 대신 정뤼청이라는 이름만 남을 수도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