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1967∼)
나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
나무 이파리처럼 한 몸에 돋은 수백 수천이 아니라 하나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백 년을 출렁이는
울컥임이 아니라 단 하나
하나여서 뭐가 많이 잡힐 것도 같은 한밤중에
그 많은 하나여서
여전히 한 몸 가누지 못하는 하나
한 그릇보다 많은 밥그릇을 비우고 싶어 하고
한 사람보다 많은 사람에 관련하고 싶은
하나가 하나를 짊어진 하나
누구나 완전히 하나
가볍고 여리어
할 말로 몸을 이루는 하나
오래 혼자일 것이므로
비로소 영원히 스며드는 하나
스스로를 닫아걸고 스스로를 마시는
그리하여 만년설 덮인 산맥으로 융기하여
이내 녹아내리는 하나
외로울 고(孤), 홀로 독(獨). 고독, 그중에서도 홀로, 혼자라는 개념을 정확히 반영하는 철학적인 시다. 나는 단 하나다. 하루에 하루를 사는 하나. 이 세상 모든 이들의 하루!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백 년을 출렁인다.’ 그 ‘울컥임’이 역사이리라. 현기증 나는 거기 휩쓸리지 않고, 나는 오롯이 하나. 그런데 ‘하나여서 뭐가 많이 잡힐 것도 같은 한밤중’인데, 하나인 것이 나를 몸 가누지 못하게 한다.
인간이 혼자 몸을 뒤척이게 하는 에너지가 뭘까? 외로움이다. ‘나’를 각성했으니 자기에게만 신경 써야 하는데, 자꾸 남의 일에 관여하게 된다. 남과 얽히게 된다. 탐욕 때문에, 동정심이나 공명심이나 야망 때문에. 결국 외로움 때문에! 외롭다 보니 하나가 하나를 짊어진다. 그래도 둘이 되는 게 아니다. 나는 하나다.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집에 돌아오면 나는 하나다. 가족이 몇이건 애인이 몇이건, 미안하지만 나는 하나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