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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0 하늘에 띄우고… 바그너를 찾아 떠났다

입력 | 2013-10-08 03:00:00

■ 항공기 엔지니어 출신 베이스 오재석, 오페라 ‘파르지팔’로 한국 무대 데뷔




4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베이스 오재석. 그는 “베이스로서 차근차근 길을 따라가고 있다. 반짝 스타가 될 나이도 아니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혼자 힘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변의 모든 분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나이 든 왕의 분장을 마치고 미처 의상을 갈아입지 못한 남자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백스테이지에 얼음처럼 서 있었다.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뭉클한 감정에 휩싸인 채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의 서곡을 들었다. 이날은 파르지팔의 한국 초연일이자 베이스 오재석(41)의 한국 오페라 무대 데뷔 날이었다.

그는 대일외국어고 시절 남성중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하긴 했지만 성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좋은 목소리만으로 1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음악보다는 공부 쪽에서 더 밝은 미래가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거쳐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비행기를 만드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꿈이었다. 그는 1997년부터 5년간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국항공우주연구소(KARI)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개발팀에서 랜딩기어 및 브레이크 컨트롤 시스템을 맡았고, 스마트 무인기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에 참여해 만든 비행기가 성공적으로 하늘을 나는 것을 본 뒤 생각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10여 년간 비행기 만드는 일을 하고 나니 작업 과정이 보수적인 항공기 디자인보다는 내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30대가 되니까 노래를 해서 1등을 못해도 괜찮다, 열심히 하면 되지,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2년 그는 서울대 성악과에 학사 편입해 새로운 문을 두드렸다. 2000년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해 2001년 12월에는 아들 현택이 태어난 터였다.

늦깎이 성악도는 동양인 최초로 바그너 오페라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에 입성한 베이스 강병운(65)이 지도해 주기를 바랐지만 강 교수는 단호히 거절했다. “회사로 돌아가라. 네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노래를 하겠다면 레슨을 해주겠다. 성악가가 뭐 그렇게 좋은 건 줄 아니. 힘들고 외롭고 괴로운 길이다.”

오재석은 방학 때 불가리아의 이름난 베이스에게 레슨을 받으러 갔다가 독일 베를린에 강 교수가 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가리아에서 2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베를린에 갔다. 한 학기 동안 그를 외면했던 강 교수였지만 꼬박 하루를 넘겨 찾아온 제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공대생 때부터 좋아했던 바그너 때문이었다. 독일 쾰른음대와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음대를 거쳐 독일 마인츠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독일에서 오페라 오디션에 참가해 수도 없이 떨어졌고 단역이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무대에 꾸준히 서 왔다. 마인츠극장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살바토레 샤리노의 현대 오페라에 선 것을 계기로 호평을 받아 지난해 5월 부퍼탈 극장 전속가수가 됐다.

오재석은 최근 막을 내린 파르지팔에서 선왕(先王) 티투렐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출연 시간은 4시간이 넘는 작품 중 25분 안팎이다. 그러나 티투렐의 대사가 극의 중심을 이끌어나가는 상징적인 배역이다. 관객으로 찾아온 KAIST 12학번 후배에게 사인도 해줬다.

그는 스스로를 이제 ‘성악가 면허증’을 막 받아든 사람이라고 한다. 연습 기간에 주역 구네만즈 역을 맡은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의 노래를 열심히 들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좌절과 도전의 시계추가 왔다 갔다 했다.

“내가 과연 저렇게 부를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아니야. 뭐 이런 생각들이 계속 스쳐갔죠. 엔지니어였던 사람이 노래를 한다는 걸로 알아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성악가로서 나만이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기인 말고 예술가죠.”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