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週 최장근로 68 → 52시간 단축”근로기준법 바꿔 2016년 적용 추진… 근로시간 줄여 ‘고용률 70%’ 공약 맞추기
얼마 전까지 한국 완성차 업체들의 근무방식을 상징했던 표현이다. 평일에 근로자 1인당 하루 10시간씩 주야 2교대로 총 20시간 생산라인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주말에 14시간을 더 일한다. 회사나 생산물량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한 사람이 일주일에 최장 64시간까지 일하는 셈이다. 물론 이는 노사 합의에 따라 이뤄져 온 관행이었다. 올해 현대·기아자동차가 주간 2교대제를 실시하는 등 업체별로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완성차 업계에서는 여전히 장시간 근로가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근무관행이 단계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안이 올해 안에 확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7일 새누리당과 고용노동부는 당정협의를 열어 이번 정기국회 때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안으로 근로기준법을 고치기로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평일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씩, 주당 40시간’으로 정해 놓고 있다. 바로 ‘법정근로시간’이다. 연장근로 한도는 12시간으로 돼 있다. 그러나 휴일근로의 경우 노동부는 별도의 행정해석을 통해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토·일요일에 8시간씩 최대 16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 결국 평일(40시간)과 연장근로(12시간), 휴일근로(16시간)를 모두 합치면 최대 68시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셈이다.
○ ‘장시간 근로’ 사라질까
하지만 7일 당정협의에 따르면 지금까지 별개의 것으로 인정했던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된다. 평일에 초과근로를 하든 휴일에 출근해서 일하든 모두 합쳐서 12시간을 넘지 못하게 한 거다. 이렇게 되면 주당 최장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줄어든다. 근로자가 더 많은 초과 근로 수당을 받기 위해 더 일하고 싶어도 주당 52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시행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논의 중인 방안 가운데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의 발의안은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은 2016년부터, 30∼299명까지는 2017년부터, 30명 미만은 2018년부터 각각 시행토록 하고 있다. 최종 사업장 규모는 향후 논의 과정에서 결정키로 했다. 기업 상황을 고려한 예외조항 신설도 추진하기로 했다. 도입 초기 한시적으로 주당 8시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단, 노사 합의가 있어야 하고 연중 6개월만 실시토록 할 방침이다.
지난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주 52시간을 넘게 일할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7배로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장시간 근로가 노동생산성을 하락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근로자 한 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27.2달러인 반면 근로시간이 적은 미국은 59달러, 영국 46.2달러, 독일 53.6달러 등으로 우리보다 많다.
앞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2010년 6월 ‘2020년까지 연간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한다’는 합의문을 채택했다. 지난해에는 법정근로시간 초과 한도를 12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법 개정이 탄력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정책의 영향이 크다. 새 정부는 노사정위원회 합의에서 더 나아가 2020년까지 근로시간을 OECD 수준으로 단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장시간 근로 관행을 고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방하남 노동부 장관은 7일 당정협의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제도 시행 과정에서 기업들이 적응하도록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 ‘임금 보전’이 최대 쟁점
이번 근로시간 단축은 2004년 도입된 주 40시간 근무제와는 다르다. 당시는 법정근로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든 것.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에도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연장근로에 해당되는 시간이 늘면서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기업 역시 기존 근로자를 연장·휴일근로에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인력 충원에 대한 부담을 피해 왔다. 장시간 근로 관행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노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임금 손실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바뀐 제도가 현장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은 물론이고 노사 갈등이 예상된다. 현대차 등 노사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일부 대기업 노조만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는 연차휴가 사용 촉진, 합리적인 교대제 개편을 위해 노력하고 정부는 설비투자나 교육·훈련서비스 등 종합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근로시간 최종 확정까지 ‘첩첩산중’
여당과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방침에 합의했지만 최종 확정까지는 난관이 많다. 당장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을 생색내기이자 실효성 없는 방안으로 규정하며 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홍영표 의원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새누리당의 개정안은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없고 (예외조항 때문에) 오히려 합법적으로 주 60시간 근로시간을 허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고등법원은 ‘주 40시간이 넘는 근로시간의 경우 휴일이나 평일에 상관없이 모두 연장근로시간으로 규정한다’는 판결을 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필요 없이 현행법만 잘 준수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신계륜 의원도 “노동시간 단축은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는 복잡한 문제다. 관련 법안이 올라오면 논의는 하겠지만 (새누리당 안대로)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최장 근로시간을 단축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실현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이성호·황승택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