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테러 30주년]단상 첫줄 도열 8명중 유일 생존…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 인터뷰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 당시 합참의장으로 현장에 있었던 이기백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이 전 장관의 부관이던 전인범 육군 소장. 전 소장은 테러 당시 부상을 당한 이 전 장관을 둘러업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 전 장관은 단상 첫 줄에 도열해 있던 8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국방부 제공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북한이 설치한 세 개의 폭탄 중 하나가 폭발하는 순간, 번개가 치는가 싶더니 이내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들렸다. 이 전 장관은 바로 기절했다. 폭탄 파편에 숨진 사람도 있었지만 건물이 내려앉으며 잔해에 깔려 순국한 인사도 많았다.
그는 사고로 두개골에 상처를 입었다. 지금도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상흔이 오롯이 느껴진다. 의료진에 따르면 파편이 5mm만 더 들어갔다면 뇌가 손상돼 즉사했을 것이라고 한다. 무너진 대들보에 다리가 완전히 파묻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 전 장관의 부관인 중위 한 명이 아수라장이 된 사고 현장을 뚫고 그에게 뛰어왔다. 바로 전인범 육군 소장(55·육사 37기·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이었다.
테러 직후 아수라장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테러 당시의 모습. 문화공보부 사진 담당 직원이었던 김상영 씨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테러 직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누른 탓에 사진의 초점이 많이 흔들려 있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사람을 구출하려는 모습이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보여준다. 김상영 씨 제공
“또 다른 추가 폭발로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지만 당시에는 ‘의장님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매캐한 화약 냄새, 비명과 신음이 뒤범벅되고 사상자들의 유혈이 낭자했다.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였다. 잔해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이 전 장관을 발견한 전 소장은 그를 둘러업고 현장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이 의장의 상태는 심각했다. “현지 의료진에게 ‘이분은 한국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다. 꼭 살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뒤 수술실까지 들어가 자리를 지켰죠.”
이 전 장관은 당시 양손과 얼굴에 심한 화상을, 머리 어깨 복부 등 전신에 골절상과 파편상을 입었다. 양쪽 고막은 파열됐다. 5시간의 긴 수술 끝에 깨어났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몸은 어느 정도 치유됐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김재익 전 대통령경제수석, 이범석 전 외무부 장관 등 뛰어난 국보급 인재들이 당시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은 더욱 웅비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웅산 테러가 점점 잊혀져 가는 현실에 대해선 “한스럽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이라도 아웅산 테러와 같은 북한의 명백한 만행을 수집해 국민 안보교육 등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사건의 진상을 분명히 알고 북한의 도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였다.
“북한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적화통일 하겠다는 생각에서 달라진 게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웅산 테러의 교훈을 잊지 않고 북한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했다면 감히 북한이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아웅산 테러로 북한 정권의 잔학성을 ‘체험한’ 전 소장 역시 군 생활 내내 북한 정권에 대해선 한 치도 방심해선 안 된다는 신조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북한의 테러 위협은 지금도 상존한다”며 “아웅산 테러 30주년을 안보의식을 다잡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손영일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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