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물가를 잡은 일이다. 80년대 초반의 엄청난 인플레이션은 성장의 장애물이자 서민에겐 고통이었다. 신군부는 몽둥이로 기획원을 두들겨 패서라도 물가를 잡겠다고 했지만 군인의 발상일 뿐, 어디 경제가 그렇게 돌아가는가. 김재익은 각계 반발을 무릅쓰고 추곡수매가와 임금 상승률을 낮추고 1984년 정부 예산을 동결해 무섭게 날뛰던 물가 고삐를 잡았다.
▷아웅산 사태 30주년을 맞아 아웅산에서 숨진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한 평전이 출간됐다. 평전 속의 김재익은 컴퓨터와 같은 두뇌를 가진 천재, 탁월한 경제 관료이기 이전에 겸손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나 ‘내연기관의 작동원리’처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가 국보위에 참여한 것을 두고 대학생 아들 친구들이 “김일성 밑에 가서도 일할 사람”이라고 하자 “김일성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해야지”라고 말한 얘기는 유명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