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꽃’ 사냥, 스포츠 게임-정치적 도구로 진화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제공
최고의 실전 기병훈련은 사냥
화약무기가 전장을 휩쓸기 전까지 말을 탄 기병(騎兵)은 최고의 전투력을 보였다. 강력한 돌파력과 적의 머리 위에서 공격하는 유리한 위치는 기병만이 갖는 장점이었다. 여기에 적에게 엄청난 공포심까지 유발시킬 수 있었기에 기병은 전장의 꽃이자, 전투력의 상징이었다.
기병, 달리는 말 위에서 공을 쏘다
조선시대 기병들이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무예를 훈련하기 위해 썼던 방법이 ‘사구(射毬)’다. 이름처럼 말 위에서 움직이는 공을 향해 쏘는 일종의 모의 사냥 훈련이었다. 특히 공의 움직임과 속도를 거의 살아 있는 동물과 같게 하기 위해 말을 탄 기병이 앞에서 줄에 매단 커다란 공을 끌고 달려가면 뒤에서 쫓아가는 기병이 이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공이 이리저리 통통 튀며 요동을 쳐 진짜 살아있는 동물 사냥을 능가하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사구를 할 때는 사람이 다치는 걸 막기 위해 날카로운 촉을 제거하고 끝 부분에 솜을 둥글게 말고 무명으로 씌운 무촉전(無鏃箭)이라는 화살을 사용했다. 또한 화살의 깃은 일반 화살보다 두 배 이상 넓은 것을 달았는데 근접거리에서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형태였다. 이러한 사구가 펼쳐지는 날이면 주변에 있는 군사들이 모두 모여 화살 한발 한발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명중할 땐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처럼 사구는 관람용 스포츠의 역할도 했다.
‘서바이벌 게임’을 거쳐 ‘정치적 도구’까지
조선시대에는 사냥 훈련이 정치적으로도 활용됐다. ‘강무(講武)’라 하여 국왕이 군사들과 어우러져 직접 사냥을 하는 의례까지 있었다. 강무 의례를 진행할 때에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만 명의 군사를 특정 지역에 매복시키거나 진형을 갖춰 몰이를 하고 사냥을 했기에 그 자체로 웬만한 전투를 능가하는 규모였다. 이런 대규모 사냥을 통해 왕은 군사를 통솔하고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는 데 활용했다. 이렇듯 자연과의 투쟁 속에서 펼쳤던 사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무예·군사 훈련이었다. 이후 스포츠, 정치적인 도구로까지 진화했다. 생존을 위한 본능, 그리고 무예는 정치·스포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사냥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