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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현미]사라지는 말, 숨어버린 말

입력 | 2013-10-10 03:00:00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한국인이라면 한두 줄씩 외우는 국민 애송시다. 대부분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이렇게 기억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그러나 영랑은 그렇게 쓰지 않았다. 전남 강진의 영랑 생가에 세워진 시비(詩碑)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을 테요’라고 새겨져 있다. 맞춤법이야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그렇다 치고 사투리인 ‘기둘리고’에서 교과서 편집자는 난감했을 것이다. 전남의 ‘기둘려’를 인정하면 전북이나 충청도에서 쓰이는 ‘지둘려’도 허용해야 한다. 해결책은 대한민국 표준어였다.

단풍철이 다가오면 읊조리는 영랑의 시가 ‘오-매 단풍 들것네’다. 장독대에 날아든 감잎을 바라보며 누이의 입에서 나온 탄성이니 이것을 서울 여자 말투로 옮기면 ‘어머나!(또는 와!) 단풍 드네’가 될 것이다. 매끈한 표준어로는 도무지 시의 맛이 나질 않았는지 모든 시집에서 ‘오매’는 살려 놓았다. 그러나 시 2연에 나오는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는 또 어쩌랴.

표준어가 통치와 통합을 위해 인위적으로 규정한 ‘글말’이라면 사투리는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사용해온 ‘입말’이다.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운 아이들도 집에서는 사투리로 말하고, 평소 또박또박 표준어를 구사하던 이도 고향 사람끼리 만나면 금세 사투리로 돌아간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써온 ‘탯말’의 힘이다.

또 직설적이면서 압축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투리만 한 게 없다. 최근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킨 남덕현의 ‘충청도의 힘’은 원래 페이스북에 연재해 입소문이 난 에세이다. 서울 살던 사위가 충청도 보령 시골 마을에서 처가살이를 하며 보고 들은 어르신들 이야기를 입말 그대로 옮겨 놓았는데 귀에 착착 감긴다. “야, 시상일이 한가지루다가 똑 떨어지는 벱은 절대루 Q는 겨. 사램이 뭔 일을 허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 새끼를 친대니께?”

송은일의 장편소설 ‘매구할매’에는 차진 남도 사투리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꼬치도 안 달고 나옴시롱 야착키도 하다. 햇님인지 달님인지 으짠다고 이라고 애미 애를 믹이냐 가시내야.” 송 씨는 전남 고흥의 고향 마을 경로당에서 “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쓴담시롱야? 내 이약 잔 써주라”며 모여드는 할머니들을 보며 가슴이 저릿했다고 한다. 언젠가 사라질 이야기, 언젠가 들을 수 없게 될 목소리가 소설 속에서 녹음기를 틀 듯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은 작가가 부지런히 그들의 입말을 채록하고 다듬은 덕분이다.

사투리의 문학적 가치를 발견한 작가들이 토박이에게 원어민 수업을 받아가며 사투리를 배우려 하는 것과는 반대로, 여전히 애써 탯말의 흔적을 잘라내려는 이들이 있다.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주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에 오자마자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사투리를 교정해주는 학원에 다닌다. 그래도 조금은 어색한 말투에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강원도 OOO”라는 가짜 주소를 댄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말은 이방인의 징표일 뿐이다. 북한 말투가 사라질수록 남한 사회에 잘 적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탈북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세 번째 집’(이경자 지음)의 실제 모델인 이모 씨(40)도 조곤조곤한 서울말씨로 이렇게 털어놓았다. “결국 이곳에서도 우리는 우리끼리죠.” 사투리가 우리의 언어생활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처럼 북한을 떠나 이 사회에 정착한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도 풍부해진다.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khm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