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경기 의왕시 고천동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직업교육실에서 윤두남 교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학생들이 제빵제과 수업을 마치고 직접 만든 따뜻한 빵을 맛보고 있다. 윤 교사가 담임을 맡은 서울소년원 205호실 졸업생 160여 명은 다시 교도소 문턱을 넘지 않았다. 의왕=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B(18)의 왼팔에는 휘감아 오르는 용 문신이 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친구 물건을 빼앗는 게 재미있었다. 싸움에서 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놀다 싫증나면 형들과 어울려 아파트 옥상에서 술을 마셨다. 어느 형이 팔에 새긴 문신이 부러웠다. 30만 원을 마련해 경기 안산시 문신가게에서 용과 잉어를 그려 넣었다. 성숙해진 느낌이었다. 어느 날 술과 본드에 취해 걸어가는데 앞서 가던 여성이 벌레 보듯 피했다. 그녀를 뒤따라갔다. 이후 소년에게는 강간범이란 딱지가 붙었다.
순백의 밀가루와 강렬한 문신
1일 오후 1시 20분, 수업 종이 울리자 한 무리의 학생들이 2층 직업교실 앞에 줄지어 섰다. 교사는 꼼꼼하게 인원을 체크했다. 전원 출석. 하얀 요리복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이 작업대 앞에 섰다. 과제는 소시지 빵과 더치(네덜란드) 빵이다. 강력분 800g, 중력분 200g, 생이스트 60g, 설탕 110g, 소금 20g…. 심각한 표정을 짓던 학생들은 밀가루 무게를 재고, 정량의 소금과 설탕을 섞었다. 1차 반죽은 기계가 한다. 나머지는 모두 손으로 한다.
흥미를 잃은 듯 창틀에 기대 조는 두어 명을 빼고는 두 달가량 남은 제과제빵 자격시험에 대비해 손을 바쁘게 놀렸다. 빵 24종, 과자 24종의 맛과 모양을 손, 머리, 그리고 혀로 익혀야 한다.
특성화고 제과제빵반 수업을 연상케 하지만 학생들의 머리카락이 특성화고와 달랐다. 이등병보다 짧고 투박했다. 소매가 오르내릴 때 팔뚝의 문신도 언뜻언뜻 보였다. 순백의 밀가루 반죽과 대비된 탓인지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30명 가운데 10명 가까이가 용, 호랑이, 알 수 없는 문양 등을 몸에 새기고 있다.
경기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 또 다른 이름은 서울소년원이다.
서울소년원 205호실의 한 학생이 방황했던 자신의 10대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일기.
제주는 범죄가 적은 편이다. 한두 집 건너면 친지가 살 정도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소년원 학생도 30명 남짓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빵 굽는 기술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꼈다.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전문가) 강의도 했다. 학생들은 향긋한 빵을 굽고 커피를 볶으며 고운 심성을 조금씩 찾아갔다. 소년원을 나간 학생들은 곧잘 취업에 성공했고, 재범률도 크게 줄었다. 제주소년원 제빵반의 명성은 시나브로 퍼졌다. 2007년 여름 서울소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학기 동안 준비해 이듬해 제빵반을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205호실’로 통한다.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2010년부터 전체 300여 명 가운데 60명이 제빵반에 등록했다. 인원이 많아 두 반으로 나눴다. 과거에는 자동차 정비, 정보기술(IT), 측량 등에 학생이 몰렸지만 어느덧 빵과 커피를 만드는 제빵반이 최고 인기 수업이 됐다.
윤 교사의 교육철학은 제빵과 닮았다. “빵은 반죽하고 발효하고 성형하고 굽는 과정이 있잖아요. 한 과정이라도 잘못되면 맛있는 빵이 안 나와요. 이제 겨우 반죽이 끝나가는 상태예요. 충분히 예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그에게 빵은 곧 학생이었다.
서울소년원 제빵반은 전국의 소년원 학생들에게도 유명하다. 이곳으로 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만난 학생들 중에 졸업을 앞둔 A와 B가 있다.
반죽 숙성의 교훈
사실 B는 제빵반에 지원하고도 거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지겨웠다. 그래도 세월은 흘렀다. 소년원을 나갈 때쯤 숨겨왔던 추가 범행이 드러났다.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1년 더 머물러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늘이 노래졌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그런 B에게 윤 교사가 다가와 물었다.
“제빵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였지?”
“숙성이라고 배웠습니다.”
“숙성이 뭘까?”
“과일처럼 먹기 좋게 반죽이 익는 거요.”
“너도 여기서 1년 더 익어야 한다는 거야. 나와 다시 빵 만들자.”
B의 가슴에 하얀 밀가루가 들어왔다. 반죽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니 1년이란 시간이 금방 흘렀다. 그 사이 제과제빵 자격증은 물론이고 바리스타, 고졸 검정고시까지 다 해냈다.
지난달 마지막 시험을 치던 B는 걷어붙인 팔뚝의 문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때는 자랑스러웠는데 새삼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지우자.’ 레이저 치료를 시작했다. 새길 때는 이틀이면 족했는데 없애는 데는 5∼6년 걸린다. 치료할 때마다 팔뚝은 피멍이 들지만 어린 시절 고통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참는다.
A는 소년원에 오기 전 보호시설 신세도 졌다. 아주 가끔 면회를 온 부모님의 손에 들린 빵은 맛있었다. 춘천소년원에서 서울 제빵반 얘기를 듣고 그때의 빵 맛을 떠올렸다. 난생처음 목표를 세웠다. 빵을 굽는 제빵사가 되겠다는….
빵을 만들려면 먼저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설거지하고 주방도 청소한다. 그러면서 암울했던 과거를 지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밀가루 반죽은 초등학교 때 찰흙 빚기와 흡사했다. 내 맘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선생님과 함께 반죽을 했다. 누군가와 손을 맞대고 주물럭거리는 반죽의 촉감이 좋았다. 지난해 말 노릇노릇하게 구운 자신의 첫 빵을 오븐에서 꺼내며 빵의 향기를 접했다. 코가 간질거렸다. 막 눈물이 났다.
길쭉한 소시지에 반죽을 씌우고 가위로 잘라 보기 좋게 펼쳐놓으면 준비가 끝난다. 굽는 데는 15분이면 된다. 두 시간 수업이 끝나자 순식간에 교실은 300개의 보기 좋은 소시지 빵으로 가득 찼다. 학생들의 눈빛이 빛난다.
하지만 윤 교사는 절반을 옆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라고 한다. 생소하기만 했던 베풂도, ‘고마워’라는 반응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실습 성과를 점검한 뒤 “자, 먹자”라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빵을 집어 들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순식간에 열 개를 먹어치운 학생도 있다. 우유도 충분하다. 학생들에게 이곳은 천국이다.
“여기서 먹는 빵이 왜 맛있는 줄 알아요?”
윤 교사의 질문에 기자는 “글쎄요”라고 답했다.
“따뜻해서 그래요. 아니, 달콤해서 그래요. 늘 (사랑에) 배고프잖아요.”
따뜻하고 달콤한 무언가에 허기진 소년원 학생들에게 빵은 귀한 선물이다. 이때 윤 교사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 저, 군대 가기 전에 빵 드시러 오세요.’ 제과점에 취업한 제자였다. 그는 이런 제자들 때문에 10년째 같은 전화번호를 쓰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 기자에게 교감 선생님이 중대한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귀띔했다. “A와 B 모두 올해 대학 호텔조리과 수시전형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하나 더 있었다. 윤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05호실 학생의 지난 5년간 재범률은 ‘제로(0)’라고 했다. 통상 소년원을 거친 이들 가운데 20%는 성인 교도소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205호실을 졸업한 160여 명은 모범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고봉중고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이를 ‘205호실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의왕=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