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7>네덜란드 드라흐턴市의 기적
유럽의 대표적 교통선진국인 네덜란드의 소도시 드라흐턴에는 신호등이나 운전방식을 규제하는 표지판이 없다. 차와 자전거, 보행자가 함께 소통하며 도로를 사용한다. 인구 6만 명인 드라흐턴의 연평균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한 건 남짓해 교통안전시스템보다 서로 양보하는 교통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유공간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 신호등이 없는 이상한 도시
드라흐턴의 도로는 2003년까지 여느 한국의 도로와 다르지 않았다. 사거리는 한국의 교차로처럼 네모꼴이었고 신호체계도 우리나라와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신호등이나 운전방식을 규제하는 표지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신기할 정도로 유연하게 교차로를 통과했다. 모든 차량은 교차로로 진입하기 전에 먼저 속도를 줄였다. 운전자들은 그러면서 각자 자신의 우측을 바라봤다. 자신이 먼저 교차로에 들어섰다 해도 우측에 교차로로 진입하는 차량이 있으면 멈춰서 양보한다. 철저하게 우측 차량에 우선통행권을 주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통행량이 많은 교차로의 경우 십자형이 아닌 회전교차로(원형교차로) 형태로 된 곳이 많다. 여기서는 먼저 회전교차로에 진입한 차량이 우선권을 가졌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제각기 갈 길을 갔다.
매일 수천 명의 보행자와 자전거, 2만5000여 대의 차량이 지나는 라베이플레인 사거리에서 만난 에델 씨(66·여)는 “우리 도시에서는 보행자가 최우선이고 두 번째가 자전거, 맨 마지막이 차량이다”라며 “신호가 없는 대신 이 약속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고 했다.
드라흐턴의 신호등이 사라지게 된 것은 ‘교통신호와 표지판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운전자가 신호에 의존할수록 도로 주변 상황에 무감각해지고 위험요소를 파악할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 교통신호가 많을수록 운전자는 ‘관리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신호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수동적 운전자가 되지만 신호가 없으면 ‘직접 질서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능동적 운전자가 된다. 함께 드라흐턴을 돌아본 한국교통연구원 김영호 박사는 “사실 나조차도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도로가 있을 때면 신호체계를 바꾸거나 표지판 등 안전장치를 추가하려 했지,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며 “교통신호가 운전자의 책임이나 주의 의무를 빼앗는다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드라흐턴의 교통체계를 설계한 네덜란드 교통공학자 한스 몬더만(사망)은 2004년 8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도로에는 ‘앞으로 가세요’ ‘우리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등의 메시지가 넘친다”며 “이는 운전자의 책임감을 없애는 위험한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호나 표지판 등으로 자동차와 자전거, 보행자를 철저히 분리하고 규제하는 기존 도로 시스템 대신 서로 소통하는 자율적 공간을 만드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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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흐턴=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