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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낮을수록 좋다” 슈퍼리치들, 거꾸로 투자 왜?

입력 | 2013-10-14 03:00:00


《 “수익률은 낮을수록 좋아. 그런 상품 있으면 앞으로도 무조건 알려줘.” 현금 자산만 50억 원 정도를 보유한 50대 여성 A 씨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상대방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증권사 직원. 수익률이 0%인 10년 만기 ‘제2종 국민주택채권(주택채)’ 물량이 나왔다는 통화를 하던 참이었다. 실제로 이 여성은 그날 지점으로 와서 3000만 원어치 주택채를 모두 사갔다. A 씨는 이런 식으로 두 번에 걸쳐 총 8000만 원어치 주택채를 샀다. 수익률 0%인 주택채는 채권 만기일이 돼도 단 1원도 이자로 얹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은행 보통예금보다 못한 이 주택채는 최근 A 씨와 같은 초고액 자산가들이 내놓기 무섭게 사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

○ 수익률 0%의 이면…“세무조사 대상은 피하자”

은행·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들에 따르면 최근 초고액 자산가들의 관심은 수익률이 시장 금리보다 낮은 0∼1%대 초저금리 상품에 집중돼 있다.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게 금융투자의 기본인데 초고액 자산가들은 왜 그럴까.

PB 업계에 따르면 자산가들이 상식을 벗어난 투자수익률을 추구하는 이유는 세무 조사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새 정부 들어 국세청은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국세청이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은 ‘실제 소득’이 아니다.

한 국세청 출신 세무담당 PB는 “국세청이 투자자의 원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자소득으로 자산의 원금을 역추정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자가 금융투자 상품에 투자하고 이자 수익을 받으면 국세청에 이자 수익이 신고된다. 국세청은 이 이자 수익을 역산해 투자자가 가진 원금을 추정한다. 이때 국세청은 모든 투자 상품의 실제 수익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시중 금리를 기준으로 투자 상품의 수익률을 ‘추정’한다. 요즘 같은 저금리에는 그래서 애써서 높은 수익률을 낼수록 숨기고 싶은 ‘원금’이 드러나는 역효과가 생긴다.

예를 들어 사업으로 10억 원을 번 사람이 이 돈을 이리저리 굴려서 연 수익률 5%를 냈다고 치자. 그러면 이 사업가가 받은 이자는 모두 5000만 원이다. 그런데 국세청은 이 사업가가 시중 금리 수준인 3.5%대의 이자율로 해당 수익을 냈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국세청은 이 사업가의 원금을 약 14억3000만 원으로 보게 된다. 그만큼 세무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금융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대부분 자산가들이 원금 보장이 되는 안정형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채권 등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며 “금융 투자상품을 시중금리로 추정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산가들은 연 수익률 0∼1%짜리 상품에 가입해 이자소득을 최대한 낮춰 자산 규모를 ‘감추려는’ 경향이 생겼다는 게 PB들의 전언이다.

○ 수익률 0%의 이면…“그래도 이익은 생겨”

고액 자산가들에게 주택채는 최고의 상품이다. 투자자가 이 채권으로 수익을 얻는 방식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매매 차익. 이 매매 차익은 비과세다.

최초 판매 시 30%가량 할인되는 데다 수요는 많은 반면 새로 발행되는 채권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보니 주택채는 쉽게 매매 차익을 남긴다. 이 때문에 물량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 초 2000억 원어치 특판을 진행했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물량이 다 소진됐다”고 말했다.

구하기 어려운 국민주택채권 대신 물가상승률에 따라 이자가 정해지는 ‘물가연동채권(물가채)’도 고액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물가채의 금리는 1%대 초중반 수준으로 주택채보다는 높지만 분리 과세되므로 세금 폭탄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초고액 자산가 가운데 분리과세나 비과세가 가능한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찾아 분산투자하는 사람도 조금씩 늘고 있다. 사업가 남편을 둔 50대 여성 B 씨는 최근 여윳돈 10억 원을 연금보험 상품에 7억 원, 유전펀드에 3억 원 투자했다. B 씨는 “보험에만 다 넣으려고 하니 급히 돈이 필요할 때 찾기도 어렵고 수익률도 적어서 절세가 되는 고위험 상품을 알아봤다”고 말했다.

조재영 우리투자증권 강남센터 부장은 “최근에는 이자 소득 3억 원까지 5.5%만 과세돼 종합과세(38.5%)보다 훨씬 세금을 덜 내는 유전펀드나 비과세인 브라질 채권에 대한 문의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업주부인 50대 여성들이 많다. 남편의 돈을 대신 운용하거나 상속·증여받은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 국세청은 남편의 돈을 아내 명의로 운용할 경우 증여한도인 6억 원을 넘어서는 사례를 찾아내 과세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일부 금융회사 직원들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아내 및 자녀 명의의 투자 상품을 만기가 되기 전 손해를 보고 무더기로 해지하기도 했다.

예상국 우리투자증권 세무위원은 “초고액 자산가들이 불안감에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세원이 드러난 부동산이 많은 경우 큰 소용이 없다”며 “버는 만큼 세금을 낸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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