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친위대(SS) 대위였던 그는 1944년 3월 24일 로마 남쪽의 아르데아티네 동굴에서 성인 남성과 소년 335명을 학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명령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사과도 없었다. 프리프케의 변호사인 파울로 자키니 씨가 이날 공개한, 올해 7월 진행된 그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프리프케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당시 나치는 유대인에게 독가스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서방 세력이 연합군의 폭력을 축소하기 위해 범죄를 날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키니 씨는 “프리프케는 아르헨티나에 있는 그의 부인 옆에 묻힐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엑토르 티메르만 아르헨티나 외교장관은 “아르헨티나는 인류의 품위에 대한 이 같은 모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의 시신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