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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들 이력서가 넘쳐나고 있다

입력 | 2013-10-15 03:00:00


기업들 인력 구조조정 잇달아


《금융업-제조업 가리지 않고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잇달아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경력직 구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막 같은 인력시장
누군가는 “외환위기 직후 같다”라고까지 얘기합니다. 이들이 갈 곳은 정말 없는 걸까요?
“지금 인력시장에는 이력서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꼭 외환위기 직후 같은 느낌이에요.”》

헤드헌팅업체 유앤파트너즈의 유순신 대표는 현재 인력시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금융업, 제조업 등을 가리지 않고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잇달아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 구직자들이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들이 갈 자리는 많지 않다. 글로벌 경기불황이 길어지면서 대부분 기업들이 인력 충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구직자들

경기에 따라 인력 변동이 심한 곳은 증권사와 투자자문사 등 금융업계다. 6월 말 기준 62개 증권사 임직원 수는 4만1700명 수준으로 1년 전보다 2000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여기에다 삼성증권이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100여 명을 계열사로 전환 배치했다. KTB투자증권도 이달 들어 최대 30%(약 150명)까지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인원 감축은 제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박병엽 부회장이 스스로 물러난 팬택과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STX그룹, 동양그룹이 대표적이다.

팬택 직원 800여 명은 이달 초부터 6개월간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전체 직원 2500여 명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무급 휴직자 중 상당수는 이미 구직시장에 뛰어들었다. 헤드헌팅업체 헬로파트너스의 이승봉 대표는 “지난주에 팬택 직원 몇 명을 인터뷰했다”며 “앞으로도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무급 휴직자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월 채권단 자율협약 신청을 한 STX그룹에서는 올 상반기(1∼6월)부터 대규모 인력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회사를 떠난 이들은 임원들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TX, STX팬오션, STX엔진의 6월 말 기준 미등기 임원 수는 각각 20명, 10명, 12명으로 1년 전(각각 35명, 19명, 20명)의 절반 수준이다. STX조선해양의 미등기 임원은 지난해 6월 57명에서 현재 24명으로 줄었다.

직원 구조조정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400명에 가까웠던 ㈜STX 직원들 중 150여 명이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지난달 말 수십 명이 추가로 짐을 쌌다. STX팬오션도 현재 30%의 인원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동양그룹 계열사에서도 스스로 회사를 뛰쳐나오는 직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 기업들은 관망하는 자세

구직자들은 넘쳐나고 있지만 구인시장은 썰렁하다. 공급만 많고 수요는 부족한 셈이다.

글로벌 헤드헌팅업체 콘페리의 김승종 한국대표는 “상당수 회사가 불황 여파로 신규 사업 추진을 미루는 상황”이라며 “인재에 대한 투자도 보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봉 대표는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경력직을 채용하겠다는 의뢰가 심심찮게 들어왔는데 하반기(7∼12월)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고 전했다.

실제 한 10대 그룹 계열사는 올 상반기에 ‘몇몇 위기설이 도는 기업에서 고급 인력을 미리 데려와야 한다’는 사내 의견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력업종의 글로벌 시장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실제 채용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다른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최근 경력 지원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우리가 필요한 수준의 인력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며 “설령 좋은 인재가 있더라도 경기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인력을 늘릴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인사 전문가들은 대기업 출신이라고 무조건 대기업에 지원하거나 자신이 일하던 전문 분야만 고집할 경우 구직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인사컨설팅업체 타워스왓슨의 한광모 상무는 “임원이나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은 회사가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기 전 먼저 새로운 둥지를 찾기 마련”이라며 “현재 시장에 나온 구직자들은 다소 눈높이를 낮추거나 유관 업종으로 지원 폭을 넓혀야 공백기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전현호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양질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구직자들도 중소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버린다면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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